빙판형제, 8년만의 오륜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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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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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외로운 선수의 길… 때론 동료로 때론 경쟁자로, 채찍과 위안 돼 주는 그대… 가족!!!

작은 사건이 형제의 운명을 갈랐다. 초등학생이던 1980년대 후반 겨울. 형제는 스피드스케이팅 대회에 함께 출전했다.

동생은 선두로 달리다가 형에게 역전을 허용하며 2위에 머물렀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동생에게 스피드스케이팅을 그만두라고 권했다. 피겨스케이팅 코치였던 어머니도 형제가 같은 종목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한 명은 다른 종목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동생은 결국 어머니를 따라 피겨로 종목을 바꿨다. 형제의 인생은 그렇게 바뀌었다.

이규혁-규현, 빙속선수로 피겨코치로 밴쿠버 참가
“1년에 3, 4번밖에 못만나지만… 서로에게 큰힘 돼”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때 빙상장에서 이규혁(왼쪽) 규현 형제와 어머니 이인숙 씨(53)가 포즈를 취했다. 어머니는 피겨 국가대표 감독을 지냈고 아버지 이익환 씨(63)는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이다. 사진 제공 이규현 코치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때 빙상장에서 이규혁(왼쪽) 규현 형제와 어머니 이인숙 씨(53)가 포즈를 취했다. 어머니는 피겨 국가대표 감독을 지냈고 아버지 이익환 씨(63)는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이다. 사진 제공 이규현 코치
20년이 흘렀다. 형제는 내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나란히 참가한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간판 이규혁(31·서울시청)과 피겨 여자 싱글 곽민정(16·군포 수리고)을 지도하는 이규현 코치(29) 형제. 1998년 나가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각각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 대표 선수로 참가한 뒤 세 번째다.

이들 형제는 1년에 겨우 서너 번 만날 정도로 서로 얼굴을 거의 못 본다. 종목이 다른 데다 해외 전지훈련이 잦기 때문이다. 오히려 올림픽에서 자주 만났다. 2002년 솔트레이크 대회에서 찍은 사진이 가장 최근에 함께 찍은 것이다. 이규혁은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 동생이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정도”라며 “두 달 전 동생을 만났는데 많이 늙었더라”며 웃었다. 이규현도 “형과 통화는 자주 하지만 얼굴을 맞대고 얘기한 적은 거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들 형제의 성격은 전혀 딴판이다. 이규혁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답게 직설적인 성격에 다혈질이다. 반면 이규현의 성격은 차분하고 꼼꼼하다. 이규혁은 “종목이 다르다 보니 성격도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규현은 “예전에는 형의 성격을 이해할 수 없어 자주 부닥치곤 했지만 이제는 체육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서로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형제는 8년 만에 함께 나가는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가슴이 설렌다. 이규혁은 경기 이외의 시간은 동생과 함께 보낼 생각이다. 이규현 역시 “형의 경기를 응원하고 방도 함께 쓰고 싶다”며 웃었다.

이들은 서로의 종목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서다. 그러나 이들은 올림픽을 앞두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에서 가장 큰 적은 긴장감이에요. 코치로서 선수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으면 해요.”(이규혁)

“형은 그동안 올림픽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부담을 털어내고 지금껏 해온 만큼만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형을 믿어요.”(이규현)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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