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뉴욕이 반했다 꽃을 든 남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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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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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지점 여는 플로리스트 정성모 씨

그의 첫인상은 한국의 뚝배기 같았다. 언뜻 가수 박진영을 닮은 외모와 그을린 피부, 낮은 음색과 느릿한 말투, 툴툴 소매를 걷어 올린 검회색 폴로셔츠와 편안해 보이는 카키색 바지…. 서양의 ‘꽃을 든 남자’들을 만났을 때 훅 느껴져 오던 ‘게이’ 느낌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었다.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훨씬 더 유명한 재미 플로리스트 정성모(미국명 성 정·50) 씨. 머리보다는 직관으로 빼어난 감각을 알아채는 뉴요커들을 사로잡은 남자. 그가 미국 뉴욕 첼시 지역에서 20년째 운영하는 꽃집 ‘도로스 아넥스(Doro's Annex)’는 온갖 트렌드가 밀집하는 뉴욕에서 꽤 이름을 날리는 명소다.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와 ‘가십걸’, 영화 ‘뉴욕의 가을’과 ‘바닐라 스카이’, 패션 브랜드 ‘베라 왕’과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로더’의 매장 장식까지 온통 그의 손을 거쳤다. ‘걸어 다니는 트렌드’인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1주일에 한 번씩 자신의 집 꽃 장식을 그에게 맡긴다. 여배우 우마 서먼은 화장기 없는 얼굴과 청바지 차림으로 거의 매일 찾아와 꽃을 사는 그의 VIP 고객이다. “안녕, 성 정! 오늘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올 건데 무슨 꽃이 좋을까요?”

어떻게 그는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었나. 그는 국내 대학을 다니던 20대 때 이모가 살던 미국 뉴욕에 ‘맨손으로’ 건너갔다. 이모가 운영하던 꽃가게 ‘도로스 아넥스’에서 청소하고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 꽃과 맺은 첫 인연이다.

“꽃 이름도 몰랐을 뿐 아니라 꽃이 내 인생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뉴욕 시티칼리지를 졸업하고 가정을 꾸린 그에게 이모는 이 가게를 넘겼다. 운명처럼 ‘꽃을 든 남자’가 된 그는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았다. 까치밥, 호접란, 망개 등 동양적인 꽃들을 식물 스스로가 가진 유려한 선(線)을 살려 꽂았다. 화가, 감독, 배우 등 늘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찾는 뉴요커들은 ‘성 정’ 스타일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1980, 90년대 그는 ‘돈다발을 세며’ 살았다고 한다.

그는 27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도로스 아넥스’ 서울점을 연다. 이달 초 미리 가 본 그곳엔 그의 손으로 거듭난 꽃들이 있었다. 아이보리색 장미, 연두색 풍선초, 와인색 호접란을 섞어 담은 꽃 장식은 로맨틱하면서도 그윽했다. 천장 조명에는 빨간색 망개 가지를 길게 늘어뜨려 샹들리에처럼 장식했다. 그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연출을 골라달라고 했더니, 작은 사각 수조에 빼곡하게 꽂힌 낮은 키의 빨간색 장미꽃들을 가리켰다. 언뜻 가장 심심해 보였던 스타일이었다. 그는 “옆에 놓인 사각 양초와 조화를 이룬 것”이라며 “꽃은 스스로 부각되면 안 되고, 주변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신부들은 연예인 누구누구 스타일을 따라하며 거의 똑같은 웨딩 부케를 든다. 한국에서 플로리스트는 아티스트가 아닌 기술자 취급을 받는다. 국내 호텔 웨딩 꽃 장식은 너무 비싸다. 그런 풍토를 바꿔보고 싶다”는 거침없는 그의 말도 뚝배기 느낌이었다. 한국적 여백의 미로 뉴욕을 매료시킨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 꽃의 세계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분간 뉴욕과 서울을 분주하게 오갈 그는 서울에서 플라워스쿨도 열 예정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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