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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4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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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국아! 힘내” “아빠! 파이팅”
해남서 임진각까지 21일 사투
새카맣게 탄 목과 팔뚝은 ‘훈장’
아버지의 목은 새카맸다. 팔뚝이 빨갛게 탄 채 전동휠체어에 탄 아들의 이마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난치병 친구들을 위한 희망의 국토 종단’이란 문구가 새겨진 노란 깃발은 비바람에 색이 바랬다. 4월 13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출발한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는 걸어서, 아들은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670km의 대장정을 마치고 3일 오후 2시 반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 도착했다.
▶본보 4월 20일자 A10면 참조
도착지가 가까워질수록 아버지 배종훈 씨(43)는 말을 길게 잇지 못했다. 대전에서 오른쪽 무릎을 다친 후 일주일을 넘게 절뚝거리며 아들 재국 군(13·대전 옥계초교)을 지켜왔다. 드디어 완주를 끝내고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마련된 축하 무대에 오르자 아버지는 슬그머니 무대 뒤로 자리를 피했다.
“아버지라면 누구나 똑같이 했을 겁니다. 다만 아들과의 약속을 지켰을 뿐 오늘은 재국이가 주인공입니다.”
21일 동안 한 시간마다 재국이의 근육을 마사지해주고 밥을 먹이고 소변을 받아냈던 아버지는 멀찍이서 아들을 자랑스럽게 지켜봤다.
재국이는 근이영양증이라는 근육병을 앓고 있다.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 끝내 심장이나 폐근육도 힘을 잃는 난치병이다. 2007년 첫 번째 국토 종단을 했을 때만 해도 재국이는 머리 위로 손을 들고 브이(V)자를 그려 사진을 찍었다. 계속 진행되는 근육병 탓에 이번에는 힘겹게 엄지손가락만 들고서 완주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이의 근육이 더 굳기 전에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아버지. 두 번째 국토 종단은 지금은 혼자서 숟가락도 잘 들지 못하는 재국이가 세상에 흔적을 남기길 바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21일간 전국을 거쳐 오며 재국이와 아버지 배 씨에게는 고마운 사람도 많이 생겼다. 두 번째 국토 종단을 마치는 3일에는 재일동포 격투기 선수 추성훈 씨와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홍보대사 전혜빈 씨가 재국이와 함께 길을 걸었다. 정부대전청사 참사랑 나눔 봉사대도 21일을 함께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서는 누리꾼이 모여 후원금을 만들었다.
재국이와 아버지는 벌써 세 번째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 횡단이 목표다. 아버지와 함께라면 미국도 문제없다는 재국 군.
“남들은 저에게 ‘재국이 힘내! 파이팅!’을 외치지만 저는 언제나 ‘아빠 파이팅!’을 외칠 거예요.”
파주=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