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바친 전우들의 희생 헛되지 않았다”

  • 입력 2009년 4월 20일 02시 57분


6·25전쟁 영국인 참전용사 로빈 여우드 씨가 17일 경기 가평읍사무소에 세워진 영국 미들섹스 연대 추모비를 쓰다듬으며 산화한 전우들을 회상하고 있다. 가평=홍진환 기자
6·25전쟁 영국인 참전용사 로빈 여우드 씨가 17일 경기 가평읍사무소에 세워진 영국 미들섹스 연대 추모비를 쓰다듬으며 산화한 전우들을 회상하고 있다. 가평=홍진환 기자
英미들섹스연대 6·25 참전용사

여우드 씨 추모비 제막식 참가

노병은 죽지 않았다. 백발이 돼 돌아왔을 뿐이다.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군 미들섹스 연대의 희생을 기리는 추모비 제막식이 열린 17일 경기 가평군 가평읍사무소. 목발을 짚은 불편한 몸으로 행사에 참석한 영국군 참전용사 로빈 여우드 씨(77)는 떨리는 손으로 추모비를 쓰다듬었다.

보훈처의 초청으로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4개국 참전용사 65명과 함께 이 행사에 참석한 여우드 씨는 약 60년 전 6·25전쟁 당시 19세 소년병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정말 많은 전우가 죽었습니다. 저도 중공군과의 교전 중에 포탄 파편에 맞아 왼팔과 복부에 관통상을 입었죠. 당시 의사는 파편이 몇 cm만 옆으로 갔어도 신장이 파열됐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이렇게 살아남아 한국 땅을 밟게 됐으니 먼저 간 전우들보다 행복한 거겠죠.”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의 대표적 전투부대인 미들섹스 연대는 서울 탈환과 평양 수복, 중공군의 제1차 춘계 대공세를 저지한 가평전투 등에서 용맹을 떨친 것으로 유명하다. 전장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 근성 덕분에 ‘독종(die hard)’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6·25전쟁 중 이곳저곳을 누볐던 여우드 씨의 한국 방문은 2001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전쟁 당시 한강에 다리라고는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에 세어 봤더니 큰 다리만 어림잡아 10개가 넘더군요. 고층빌딩에 넓은 고속도로까지 한국인들이 이 모든 것들을 전후 50여 년 만에 이뤄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는 자신과 전우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 지켜낸, 가난했던 나라 한국이 놀라운 성장을 이루게 되어 참전용사로서의 자부심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대부분 18, 19세의 소년병으로 청춘을 미처 피우지도 못하고 산화한 전우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가치 있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다.

“당시에는 머나먼 타국 땅에서 무얼 위해 싸우는지 고민하는 전우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하늘나라에서 대한민국의 지금 모습을 보게 된다면 청춘을 바친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겁니다.”

가평=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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