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번지 아이들’의 기적

  • 입력 2008년 6월 27일 03시 12분


광주애육원 중창단 28명 노래로 꿈찾기 1년

첫 출전 음악제서 쟁쟁한 팀 물리치고 우승

아파트로 둘러싸인 야트막한 동산의 광주 애육원. 주소는 북구 동림동 81-1이다.

아동복지시설인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81번지 아이들’로 불린다. 부모가 없거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117명이 가족처럼 모여 사는 보금자리다.

하지만 바깥 세상에 나서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했던 아이들이 노래를 통해 꿈과 희망을 갖게 됐다.

○ 꿈은 이루어진다

광주시가 주최한 제1회 ‘화음으로 한마음 가족애(愛) 음악제’가 21일 오후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15개 참가 팀이 긴장된 표정으로 무대에 섰다. 관객 1000여 명은 숨죽이며 심사결과를 기다렸다.

박광태 광주시장이 “대상! 꿈을 품은 메아리”라고 발표하자 ‘81번지 아이들’은 발을 구르고 환호성을 질렀다. 애육원 윤은중(65) 원장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손을 높이 흔들며 “애육원, 애육원”을 외쳤다. 관객들은 기립 박수를 보내며 축하했다.

‘꿈을 품은 메아리’는 광주 애육원 아이들이 만든 중창단.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28명이다.

대학 합창동아리, 여고 합창단, 부부 합창단 등 쟁쟁한 실력을 갖춘 팀이 참가한 음악제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아 기쁨이 두 배나 컸다.

연습기간이 2개월도 채 안돼 85개 팀이 참가한 예선만 통과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대상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팀들이 노래만 선보인 것과 달리 이들은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노래와 율동이 담긴 뮤지컬로 꾸몄다.

돈이 충분하지 않아 몇명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장만한 겨울 의상을 입고 나갔지만 기죽지 않고 노래와 율동을 선보였다.

마녀 역을 맡은 박민지(12·초등 5년) 양은 “이렇게 큰 무대는 처음이어서 너무 떨렸다. 무대 뒤에서 모두가 손을 잡고 공연이 무사히 끝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고 말했다.

○ 중고 피아노 하나 놓고 연습

중창단은 지난해 7월 윤 원장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힘들고 절망감을 느낄 때 노래가 큰 위안거리가 될 것이라고 판단해서였다.

현대·기아자동차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2008년 아트드림 프로젝트’에 선정돼 재정적인 도움을 받게 돼 큰 힘이 됐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중고 피아노 옆에서 노래를 불렀다. 10년 전 기증받은 피아노라 음이 제대로 나지 않았지만 소중한 악기였다.

윤 원장은 아이들을 지도해 줄 지휘자를 찾아 나섰다. 자원봉사자를 통해 성악을 전공한 송명향(28·여) 씨를 소개받았다.

송 씨는 “제의를 받고 무척 망설였다. 처음 만났을 때 초롱초롱 빛나는 눈망울을 보고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주일에 2시간씩 아이들을 가르쳤다. 틈나는 대로 간식을 들고 애육원을 찾기도 했다.

허도연(13·초등 6년) 군은 “선생님께서 이번에 상을 타면 음악캠프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하셨다. 빨리 여름방학이 왔으면 좋겠다”면서 웃었다.

애육원 아이들은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이브에 자원봉사자와 후원자 앞에서 데뷔 공연을 했다. 자신감이 생긴 이들은 설날이나 어버이날에 아파트 경로당과 양로원을 찾았다.

윤 원장은 최근 광주시청 홈페 이지 게시판에 애육원을 후원해 준 사람들에게 글을 띄웠다.

‘돈 많이 벌 때까지 이곳에 있는 거라며 달래시는 아빠의 눈물을 보고 자란 아이들…. 그렇게 잊혀져 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갖고 꿈을 향해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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