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일은 한국사 최초의 민주공화국이 태어난 날”

  • 입력 2008년 4월 1일 02시 53분


―정부수립 60주년에 돌아보는 대한민국

이인호 석좌교수-정옥자 위원장 특별대담

《8월 15일은 대한민국이 건국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의 역사학계를 이끄는 두 학자, 이인호 KAIST 김보정석좌교수(건국 6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와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이 ‘건국 60주년’을 화두로 지난달 27일 마주 앉았다. 정 위원장이 “(건국 6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 맡은 것부터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자 이 교수는 “이게 아직 공식기구가 아니다”라는 말로 정 위원장을 놀라게 했다. 작년부터 정부와 정치권에선 다들 정신이 대통령 선거에만 가 있기에 ‘하도 답답해 작년 초 뜻 맞는 교수들이 모여 위원회를 발족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대통령부터도 건국을 다소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상황이었고, 이명박 정부는 건국의 중요성은 이해하지만 총선 등으로 정식 기구 발족이 늦어지는 것 같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사회=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민주화 운동 과정서 건국 세력 폄훼까지”

▽사회=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왜 필요할까요.

▽이=미국은 7월 4일, 프랑스는 7월 14일이면 온 국민이 축제를 벌이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8월 15일을 대부분 광복절로만 알 뿐 건국일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민주국가로서 우뚝 선, 무엇보다 중요하게 기념해야 하는 날인데도 말입니다. 게다가 민주화와 통일운동 과정에서 건국세력을 폄훼하는 기류까지 형성됐습니다. 그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고 분단을 고착시킨 인물로 봅니다.

▽정=어느 정권이나 공(功)과 과(過)가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4·19혁명을 불러오지 않았습니까. 6·25전쟁 때 국민에겐 생업에 종사하라고 해놓고 자신은 피란을 떠난 대통령을 ‘국부’로 부르는 게 타당한가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평가가 엇갈릴 때 역사는 균형을 잡는 저울추가 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공과를 따질 수 있는 것도 나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닌가요. 평가를 할 때는 용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용어를 잘못 써서 역사관에 혼선이 빚어지다 보니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식의 발언도 서슴지 않는 세력까지 나왔습니다. 한 대학교수는 “맥아더가 없었더라면 전쟁이 한 달 만에 끝나고 통일이 됐을 것 아니냐”고 했지요.

▽정=우리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교수님들이 ‘30년이 지나지 않은 것은 역사가 아니다’라면서 현대사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했습니다. 현대사 전공자가 없는 상태에서 젊은 사람들 위주로 현대사 연구가 이뤄진 겁니다.

▽이=그 공백이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시대를 산 역사학자들도 단언할 수 없는 문제를 그 후에 태어난 학자들이 제멋대로 평가하는 상황이 벌어졌지요. 역사학자들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건국 60주년을 기념해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달 부임해 보니 근현대사 쪽으로 업무가 치중돼 있더군요. 우선 균형을 맞추는 일부터 할 생각입니다.

○“외적 상황으로 인해 통일국가 못 세워”

▽사회=대한민국의 건국은 긴 한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이=잃었던 주권을 되찾았고,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애국선열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꿈을 이루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때 헌법적 기틀을 갖춘 건국이 없었더라면 박정희 시대의 발전도, 민주화 투쟁도 불가능했습니다.

▽정=그렇죠. 제국이 민국으로 바뀐 건 매우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물론 뼈저리게 아쉬운 것은 통합된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라고 해서 분단을 원했겠습니까. 북한이 일찌감치 동유럽처럼 소련의 영향권으로 흡수돼 공산주의 국가 체제를 갖춰 가고 있어서 남한만이라도 우선 민주주의 정부를 세워 그 기치 아래 재통일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지요.

▽정=우리 내부의 결속력이 모자랐고 외적인 상황 때문에 차선을 택한 것이죠. 모든 걸 떠나서 우리가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했는가를 따져 보면 그 대답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이=공과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선 올해는 60년 전 우리에게 나라가 생겼다는 것을 기뻐하고 경축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민학교’ 3학년 때 광복이 됐을 때 모두들 꽹과리 치며 춤을 추었고, 대한민국이 건국됐을 때 흥분도 대단했습니다. 미군정도 끝나고 드디어 우리 손으로 우리 운명을 개척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런 기억이 없는 젊은 세대는 광복과 건국의 의미를 잘 모릅니다. 6·25전쟁을 임진왜란과 동일 선상에 놓고 먼 옛날의 사건으로 아는 학생들을 보면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정=친일파 문제도 그렇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당시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건국 이후로 ‘반공’을 우선시하면서 친일파 문제에 대한 정리를 뒤로 미뤘습니다. 한참 뒤의 정권이 너무 급하게 흑백을 가르다 보니 젊은 세대에게 잘못 알려진 사실도 있어 분열만 더 커졌습니다.

○“민족의 비극 서로 나무라서는 안돼”

▽사회=최근 발간된 ‘대안교과서’는 뉴라이트계 학자들이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펴냈다고 합니다만….

▽이=현행 근현대사 교과서는 우리나라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없도록 서술돼 있습니다. 어떤 나라든 역사에는 명암이 있습니다. 비극은 민족 전체가 함께 겪은 것인데 함께 애통해하기보다 서로를 나무라는 일에 매달리다 보니 분단의 골만 더욱 깊어졌습니다.

▽정=한국 역사상 6·25전쟁 같은 비극은 없었습니다. 한때 수정주의 사관이 유행했을 때 현대사 전공하는 사람들을 붙들고 어떻게 북침 유도설을 주장할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내가 남침의 비극을 겪은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대안교과서가 편향된 역사를 바로잡는다고 하면서 역시 한쪽으로 치우쳐선 안 된다고 봅니다.

▽이=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그동안 통일주체사학이 중심이 돼 현실을 이념적으로 파악하려 한 데서 벗어나 객관적 사실을 보려고 많이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경제사 전공 교수들이 참여하다 보니 경제가 부각된 것은 사실입니다.

▽정=근대화 문제도 결국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취한 생존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대화를 과대평가하게 되면 우리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전통을 살려 문화국가 지향해야”

▽사회=동양의 전통에서 ‘60년’은 전환을 의미합니다. 앞으로의 60년은 어떻게 맞아야 합니까.

▽이=남북 관계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북핵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이니 전임 정부의 선전처럼 남북의 긴장이 완화된 것은 아닙니다. 초기에는 저도 햇볕정책을 지지했지만 그때는 북한의 도발은 절대 용납해선 안 되고, 한미 동맹은 흔들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습니다. 평화는 절대적이고 경제적으로 우리가 관대할 필요는 있지만 무조건 주는 식은 곤란합니다. 핵 문제는 물론 국군포로 문제도 당연히 제기돼야 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쇼만으로 끝나선 무의미합니다.

▽정=지난 10년 동안 평화 무드가 이어진 것은 인정할 부분입니다. 전쟁은 막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제 그런 햇볕정책은 끝난 것 아닌가요. 새 정부는 모든 것을 호혜적으로 판단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모든 걸 투쟁의 관계로 보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제국주의로 인한 피해 때문에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경제에만 너무 치중하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새 정부는 국민통합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 전통을 살려 지식기반사회로 가는 문화국가를 지향해야 합니다.

▽이=새 정부는 실용을 내세우고 있는데 가시적인 성과를 빨리 내겠다는 조급성을 버려야 합니다. 경제력의 토대는 정신이고 정직과 성실이 힘입니다. 핀란드는 100년 동안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형식상 받아들이면서 내적인 힘을 키웠습니다. 미소 냉전 때도 독자 노선을 지키며 실속을 챙긴 결과 지금 세계 1등국의 대열에 올라 있습니다. 그런 생존전략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이인호 KAIST 석좌교수

1996∼98년 주핀란드 대사, 1998∼2000년 주러시아 대사를 지낸 이인호 교수에게는 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사’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아홉 살 때부터 광복, 건국, 6·25전쟁을 차례로 겪은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도전에 맞서 대한민국을 지켜온 이들의 노고를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한다. 건국을 폄훼하는 사람들에게 가차 없는 비판을 해온 것도 그런 기억 때문이다. 지금은 ‘건국6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공동위원장으로 건국의 의의를 되새기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1936년 서울 출생 △1960년 미국 웰즐리대 사학과, 1967년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 박사 △1972∼79년 고려대 사학과 교수 △1979∼95년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2007∼현재 KAIST 석좌교수

● 정옥자 국사편찬위원장

정옥자 위원장은 국사편찬위원회 첫 여성 위원장이다. 6·25전쟁 때 아버지와 세 여동생을 눈앞에서 잃은 아픈 과거로 인해 그는 스스로의 역사관으로 ‘평화사관’을 유지해 왔다. 4·19혁명 때는 여고생으로 시위에 앞장섰고, 서울대 교수이던 1986년에는 군사 정권의 정권 연장 기도에 반대해 교수서명운동을 주도하는 등 현실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 이후에도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정치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조선후기를 재조명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42년 강원 춘천 출생 △1965년 서울대 사학과, 1977년 서울대 대학원 석사, 1988년 서울대 대학원 박사 △1981∼2007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1999∼2003년 규장각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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