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여덟이 된 남측의 어머니 이동덕 씨도 아들의 볼을 쓰다듬으며 “홍균아, 홍균이 맞지”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9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15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선 1968년 5월 23일 속초항에서 ‘대성호’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납북된 김 씨와 어머니 이 씨가 감격의 상봉을 했다.
납북 당시 대성호는 안개가 낀 악천후 속에서 항해를 하다가 군사분계선을 넘는 바람에 북으로 끌려갔다. 같은 해 11월 선원 8명 중 5명은 돌아왔지만 김 씨 등 3명은 끝내 귀환하지 못했다.
이 씨는 처음 만난 북측 며느리 고순희(56) 씨의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며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둘 사이에서 난 손자 2명은 군 복무 중이어서 상봉장에 나오지 못했다.
이날 상봉에선 납북자와 국군포로 등 ‘특수가족’을 포함한 남측의 99가족이 북측 가족과 혈육의 정을 나눴다. 그러나 특수가족의 상봉에선 납북인지 월북인지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1951년 북으로 갔다가 이미 세상을 떠난 형의 두 아들을 만난 정혁진(72) 씨는 조카들의 주장에 망연자실했다. 정 씨는 두 살 위인 형 용진 씨가 1951년 전투 중 다리를 다쳐 인민군에게 끌려갔다고 했지만 조카 철민(43) 씨와 철성(39) 씨는 “삼촌이 목격했느냐”며 “아버지는 생전에 혼자 올라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1950년 충북 보은의 자택에서 납치당한 형 이중우(작고) 씨의 가족을 만난 양우(75) 씨도 북측 형수 조은현(69) 씨가 “남편이 의용군으로 입대해 제대한 뒤 우리 집에 살다가 나를 만나 결혼하게 됐다”고 하는 말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연방 물만 들이켰다.
금강산=공동취재단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