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사람들’ 문예상 대상 최유정 판사

  • 입력 2007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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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마치기 전에 아이들에게 눈을 감아 보라고 합니다. 혹은 귀를 막아 보라고 합니다. 그 후에 ‘세상에는 한 번 보는 것이, 한 번 듣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 많다. 하느님이 네게 자랑할 만한 부모님이나 많은 돈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네가 이렇게 말썽을 부려도 지켜봐 주시는 보호자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건강한 몸을 주셨다. 너는 부자다’라고 말해 줍니다.”

법원행정처가 매달 1일 발행하는 소식지 ‘법원 사람들’이 지난해 한 해 동안 이 소식지에 실린 글 중 문예상 대상으로 뽑은 최유정(37·사시 37회·사진) 수원지법 판사의 글 ‘바그다드 카페와 콜링 유’의 일부다.

최 판사는 소년사건 재판을 맡았을 때 법정에 선 소년들은 대부분 이혼, 가출 같은 이유로 가정이 무너진 상태여서 아이들을 바라보면 묵은 상처를 쑤시듯 가슴 깊은 곳이 아려 오는 것을 느꼈다고 적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잠시라도 귀를 막고 눈을 감아 볼 것을 권하고, 옆에 있는 보호자(대부분 홀어머니 또는 홀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쭈글쭈글한 손을 만져 보게 하고, 서로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게 한다”고 밝혔다.

최 판사는 이런 행동이 기성세대가 벌이는 유치한 광대놀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마음에 얼음덩어리를 품고 살아 보았기에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해 선생님의 귀여움을 많이 받았고 명문대를 나왔지만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생계를 위한 직장 생활에 지쳐 있던 어머니, 친척집을 전전하던 어린 시절은 스스로 도저히 치유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보고 나서 행복의 조건은 외적인 것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법관 정기인사로 서울중앙지법으로 발령을 받은 최 판사는 14일 통화에서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외적인 조건이나 돈보다 귀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 이 글을 썼다”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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