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도쿄필하모닉과 협연했던 첼리스트 고봉인(21) 씨의 모습도 비슷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연주를 앞두고 대기실에서 두꺼운 전공서적을 꺼내 놓고 책에 열중하고 있었다.
연주가이자 과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고 씨. 그가 국내에서 첫 독주회를 연다. 31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이번 공연에서 그는 첼로로 떠나는 유럽 음악여행을 선보인다. 베토벤 ‘소나타 5번’, 마누엘 데 파야 ‘스페인 조곡 모음곡’,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Op.19’ 등 독일과 스페인 러시아의 음악을 연주한다.
“독일은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첼로를 많이 공부했던 곳이고, 러시아는 1997년 차이콥스키 국제청소년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곳입니다. 스페인은 제가 좋아하는 음악적 정열을 품고 있는 나라죠. 첫 독주회인 만큼 제 음악의 다양성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방학이라 한국에 들어 온 고 씨는 생명과학자인 아버지 고규영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의 연구실에서 ‘혈관내피세포 재생연구’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해 연구하면서 독주회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고 씨는 “혈관세포 재생사진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며 “실험 결과가 이미지로 나타나는 생물학을 연구해 보면 과학도 예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적 발견은 똑같은 실험을 계속 반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연주도 반복하는 연습에서 나옵니다. 또한 실험 데이터를 얻었더라도 연구자가 어떻게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의미의 차이가 나듯이, 연주자도 악보에 대한 창의적 해석이 무척 중요합니다.”
8세 때 첼로를 처음 배운 고 씨는 14세 때 독일 베를린에서 첼로의 거장 다비드 게링거스 교수의 최연소 제자로 입문했다. 현재는 하버드대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조인트 프로그램에서 하버드대 수학과 출신인 첼리스트 로렌스 레서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그는 학기 중에는 매일 밤 12시까지 학과 공부를 하고 오전 4시까지 첼로 연습을 한 뒤 오전 9시부터 다시 생명공학 강의를 듣는다.
“저처럼 음악과 학업을 병행했던 레서 교수는 제게 ‘건강을 꼭 챙기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러나 하버드에서는 저만 이렇게 하는 거 아니어서 괜찮아요. 내 룸메이트는 학교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고, 어떤 학생은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니 다들 잠을 안 잡니다.” 2만∼3만 원. 02-518-7343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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