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언론재단이사장 사퇴압력 파문 확산

  • 입력 2004년 12월 24일 18시 10분


코멘트
여권이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으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진 서동구(徐東九) 전 KBS 사장이 23일 이사회 표결에서 박기정(朴紀正) 현 이사장에게 패한 직후 “청와대 일각에서 박 이사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는 말이 나와 정권 차원의 인사 개입 의혹으로 번질 조짐이다.

문화관광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청와대에서 박 이사장이 더 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은 분명하다”며 “우리는 그저 (청와대가) 가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만큼 박 이사장이 (자진 사퇴라는) 현명한 판단을 해 주기 바랄 뿐이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표결에 참여한 이사들 중 일부가 막판에 서 전 사장의 선임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서 전 사장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된 배경으로 여권 일부 인사들이 서 전 사장을 미는 것도 작용했느냐는 질문에는 일부 대통령비서관 등을 거론하며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 언론재단 안팎에서는 대통령비서관 A 씨,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 특보인 B, C 씨가 서 전 사장의 선임을 위해 물밑 작업을 벌였다는 말이 파다했다. 노 후보의 언론정책고문을 지낸 서 전 사장은 지난해 3월 청와대에 의해 KBS 사장으로 내정돼 취임했으나 노조의 반발로 11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방송작가 이기명(李基明) 씨와는 인척 관계다. 본보는 이날 이 씨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한편 청와대측은 개입설은 부인하면서도 박 이사장의 재선임 문제에 대해서는 내부 의견이 엇갈렸다. 김종민(金鍾民)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언론재단 이사장 임명은 소관 부처에서 결정할 일로 청와대에서 그 문제를 공식 논의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 주무 비서관인 양정철(楊正哲)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은 기자들과 만나 “문화부가 언론재단 이사회의 결정을 승인하지 않을 것으로 안다”며 박 이사장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또 “참여정부에선 산하단체장의 경우 연임 불가가 원칙이다”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일부 비서관의 행태가 의혹을 사고 있지만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인사에 개입하지는 않은 것 같다. 복수의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도 “아주 훌륭한 분이 아니면 산하단체장의 경우 연임은 안 시키는 쪽이지만 인사추천회의 등 어떤 회의에서도 언론재단 이사장 문제가 논의된 적은 없다”고 전했다.

이를 놓고 언론계와 야당은 “규정을 무시하는 독재적 발상”, “초법적 권위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임태희(任太熙)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문화부는 이미 이사회에서 선출된 언론재단 이사장 인사에서 즉각 손을 떼고 규정대로 임명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 대변인은 “한국언론재단 이사회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임한 이사장을 정권이 개입해 교체하려는 것은 상식 이하이고 놀랍도록 비민주적인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 한나라당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들도 이날 성명을 내고 “문화부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언론재단 이사장에 선출된 인사의 임명을 거부하는 것은 노 대통령의 의중을 따르려는 과잉 충성이자 권위주의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박 이사장은 이날 “사퇴 압박이 심하다”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언론재단과 직원들의 장래를 생각해 27일 거취를 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