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세 ‘행복한 永眠’…율산 신형식옹 23일 타계

  • 입력 2003년 1월 23일 18시 44분


고 율산 신형식 선생(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2000년 백수(白壽· 99세) 연 때 가족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동아일보 자료사진
고 율산 신형식 선생(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2000년 백수(白壽· 99세) 연 때 가족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동아일보 자료사진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강남성모병원 영안실 2층 22호. 향년 102세로 영면한 율산 신형식(栗山 申衡植) 옹의 빈소를 지키는 슬하 9남매의 모습에는 추모와 평온함이 함께 교차했다. 고인은 엄한 가정교육으로 자녀들을 모두 사회의 한 축을 맡는 인재로 키우고 스스로는 천수를 누렸기 때문이다.

장남 은호(垠浩·68)씨는 51년 광주고 재학 당시 미국 하버드대로 유학을 떠나 24세에 소립자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핵물리학자. 하버드대에서 한국인이 핵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7명의 형제들은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일가를 이뤘다. 차남 상호(相浩·67)씨는 전남대 철학과 교수, 3남 동호(동浩·65·재미)씨는 녹내장분야의 권위 있는 의사다. 또 4남 춘호(62·재미)씨는 화학박사이며 7남 민호(旻浩·45)씨는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

5남은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 명호(明浩·59)씨이며 70년대 ‘율산 신화’의 주인공이자 현 센트럴시티 회장인 선호(善浩·56)씨가 6남이다.

전남 고흥군 도항면 면장의 4남3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고학으로 일본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고인은 일제강점기 강원 평창군과 전남 등지에서 금융조합이사를 하며 전남 완도와 진도 부근 90개 섬의 소작농들을 모두 자작농으로 바꿔주는 농지개혁을 주도하기도 했다. 9남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두가 고학으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결국 고난을 이겨내는 자립심이 9남매에게 남긴 고인의 ‘유산’인 셈이다.

명호씨는 “부친께 100년을 산 소감이 어떠냐고 여쭸더니 ‘스무살이 엊그제 같다’고 말씀하셨다”며 “마음은 늙지 않으셨던 것 같다”고 엷게 웃었다.

9남매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입을 모았다. 행복한 영면이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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