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상 영광의 얼굴들…수상소감과 공적

  • 입력 2002년 9월 22일 18시 53분


제16회 인촌상 수상자가 선정, 발표됐다. 인촌 김성수 선생의 탄생 111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산업기술, 공공봉사, 문학 등 3개 부문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사들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번 심사는 부문별로 전문가 4, 5명이 참여한 가운데 3개월간 공정하게 진행됐다. 인촌상을 수상하게 된 3명의 삶과 공적사항, 수상소감 등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인촌상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산업기술부문/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윤종용씨

“기업은 경영을 잘 해서 주주, 종업원,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업기술부문 수상자인 삼성전자 윤종용(尹鍾龍·58) 부회장은 “경영은 사람 돈 기술 정보 등의 자원을 잘 관리하고 의사결정, 제품생산, 서비스를 끊임없이 혁신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부회장은 33년 동안 삼성전자에 근무하면서 삼성전자를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우뚝 서게 한 주역 가운데 한 사람. 외환위기를 거치는 동안 숱한 대기업들이 쓰러졌지만 삼성전자는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더욱 탄탄한 기업으로 거듭나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윤 부회장은 “초지일관, 상식이 통하는 경영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왕도(王道)가 없다”고 말했다. 기업의 목적은 덩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내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개발과 신(新)사업 발굴에 힘써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삼성전자에 몸담은 동안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 외환위기 때였다고 회고했다. “사람과 비용을 줄이고 잘 나가는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엄청난 희생과 인내를 필요로 했다”고. 삼성은 당시 부천의 반도체공장과 방위산업체 등 당장 이익이 나더라도 미래 핵심사업이 아닌 분야는 과감히 팔았다. 지금은 세계 정보기술(IT)산업의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중장기 계획에 매달리고 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윤 부회장은 최근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걱정하면서 “사회 지도층부터 과학기술과 인재양성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발전을 이끄는 것은 과학기술이며 기업은 이를 활용해 사회의 부(富)를 창출합니다. 기술은 사람이고 사람은 곧 기술입니다. 인재양성이야말로 국가가 미래에 대비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윤 부회장은 “삼성전자도 기술개발과 인재육성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공적사항▼

33년간 삼성전자에 근무하면서 전자산업을 한국의 대표산업으로, 삼성전자를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키웠다.

외환위기와 반도체불황 때 심플하면서도 스피디한 의사결정으로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과거 관행의 탈피, 새로운 변화의 수용,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삼성전자의 수익성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반도체 한국’의 주역으로 세계 최초 4기가 D램 개발 등 국내 메모리,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선진 수준으로 끌어 올렸으며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2000 시스템 등을 개발해 한국이 통신 대국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매년 국내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신제품 및 첨단 기술개발에 투자해 디지털TV, DVD플레이어, 40인치 초박막트랜지스터액정표시장치(TFT-LCD) 등 세계적인 신제품을 잇따라 내놓는 등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과시했다.

2001년 1월 미국 비즈니스위크지가 선정하는 ‘세계 최고경영인 25인’에 선정됐고 2월에는 포천지가 주는 ‘올해의 아시아 최고경영인상’을 받았다.

▼공공봉사부문/전봉윤 다운회 다운센터 소장▼

전봉윤씨

“장애아 식당에 에어컨을 설치할 때까지 직원 식당에 냉방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출장 갔다가 돈이 남으면 몇천원이라도 반납하는 고지식한 분이다.”(삼육재활센터 강병혁 총무)

“한국의 사회복지 시설이 나아갈 방향을 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성분도복지관 총무수녀)

공공봉사 부문 수상자인 전봉윤(全鳳侖) 다운센터 소장은 국내 사회복지 관계자들 사이에서 ‘장애인의 꿈을 이뤄주는 만능 해결사’로 불린다.

1964년 서울대 사회사업학과를 1회로 졸업한 이후 38년간을 장애인과 함께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붙여진 별명이다.

전 소장을 만나기 위해 22일 서울 송파구의 자택에 들어섰을 때 부부는 “막 성묘를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부인 고영숙(高榮淑·63)씨는 6·25전쟁 당시 폭탄 파편이 다리에 박혀 무릎 아래를 잃은 뒤 의족으로 생활하는 중증 장애인.

전 소장은 대학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기독교 세계봉사회 재활원’에서 부인을 만났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한 부인은 당시 그곳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1년 뒤인 65년. 전 소장은 당시 철도병원으로부터 한 여고생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기차에 치여 사지가 완전히 절단된 그 여학생은 삶을 완전히 포기하고 주위의 어떤 도움도 거부했으나 전 소장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꿔 먹었고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3년 뒤 방송국 아나운서가 됐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전 소장은 1982년에는 수녀 몇 분으로부터 국내 최초의 서울장애인복지관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건물은 지어진 상태에서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결국 그의 손을 거쳐 복지관 운영의 틀이 마련됐다. 이렇게 해서 체계화한 복지관 운영방안은 보건복지부의 복지관 모델 및 장애인 관련 지침으로 발전했다.

전 소장의 두 딸 중 막내는 현재 사회복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큰딸 역시 자녀를 초등학생까지 키운 뒤 뒤늦게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아버지와 같은 길을 준비하는 중이다.

전 소장은 “앞으로 노인성 장애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정부와 민간이 지금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공적사항▼

1964년 서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한 뒤 기독교 세계봉사회 재활원의 수석 사회사업가를 시작으로 줄곧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을 위한 재활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데 앞장서 왔다.

장애인을 격리수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사회에 참여시키는 서비스를 개발해 왔으며 1970년대 이후 외국 원조기관이 철수하면서 국내 장애시설이 운영난을 겪자 장애아동과 후원자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이를 체계화했다.

또 재활훈련이 단순한 기능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장애인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인간관계와 사회성 형성까지 도와줘야 한다는 차원에서 장애시설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국내 90여개 복지관에서 업무지침으로 활용토록 했다.

92년부터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 근무하면서 ‘지역사회 중심재활(CBR)’방식을 강조해 국내 장애인복지관 운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올해 6월부터 다운증후군 환자의 재활을 돕는 사회복지법인 다운회의 ‘다운센터’의 소장직을 맡고 있으며 한림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장애인재활론을 강의하고 있다.

▼문학부문 유종호 연세대 교수▼

유종호씨

“오랜 세월 한길을 걸어왔고 60대에 들어서도 글쓰기를 계속하는 점을 평가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시나 소설에 비해 소홀해지기 쉬운 비평 장르에 대한 사회적 공인이란 측면도 있다고 생각되어 부가적 긍지를 갖게 됩니다.”

문학부문 수상자인 문학평론가 유종호(柳宗鎬·67)씨는 수상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45년 동안 문학비평계에서 일관된 자세로 활동해 온 그는 비평가로서는 첫 인촌상 수상자다.

문단에서 그는 경직된 교조주의나 유행에 휩쓸리는 일 없이 문학의 정통성을 유지한 대표적인 비평가로 자리매김된다. 평론 언어는 종종 난해한 경우도 있지만 그의 글은 평이하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아 수준 높은 문학의 세계를 일반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때문에 그는 문학의 위기가 거론되는 오늘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문학이 점점 사회 주변부로 밀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대중사회의 경향이기도 하고 문학 내부의 자기 파괴적 성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문학이 사는 길은 천박한 대중 추수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고양의 힘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고급문학이 문학이 사는 길입니다. 그런 점에서 극복해야 할 국면이 많다고 봅니다.”

그는 평론활동 외에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비롯해 각종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이문열을 비롯한 역량 있는 문인을 많이 발굴했다. 그래서인지 젊은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많다.

“인생 경험과

문학경험은 창작과 비평의 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이란 것도 경험 없이는 발동되지 않아요. 요즘 젊은 세대들이 편향된 교양체험으로 만족하거나 교양체험을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긴 안목으로 삶이나 문학을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 처지이기 때문에 특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 계간지에 광복 직후에 보고들은 이야기를 연재 중인 그는 자기가 살아온 세월에 대한 충실한 기록을 남기는 일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쉽게 잊고 맙니다. 그래서는 과거로부터 영 배우지를 못할 겁니다. 사회적 문화적 기억의 회복도 우리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공적사항▼

엄청난 독서량에 바탕을 둔 견고하고도 균형 잡힌 관점으로 때로는 문학의 쟁점을 해명하고 때로는 작가와 작품을 분석하면서 이 땅의 본격적인 비평문학을 성숙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는 또 견실한 안목과 중후하고도 섬세한 문체로 한국문학의 비평양식을 대표해왔다.

첫 비평서인 ‘비순수의 선언’(1962년)을 시작으로 ‘동시대의 시와 진실’(1982년), ‘문학이란 무엇인가’(1989년), ‘문학의 즐거움’(1995년) 등을 펴냈다. 특히 그는 시의 비평에 새로운 영역을 넓혀왔다. ‘시란 무엇인가’(95년),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2001년), ‘다시 읽는 한국시인’(2002년) 등의 저서는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백석, 임화 등 월북 시인에 대해 심층분석한 비평문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학과 더불어 살아온 그는 57년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50년대 말부터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뉴욕주립대 대학원(버팔로)을 졸업한 그는 인하대와 이화여대 교수를 거쳐 96년 연세대 문과대 교수로 부임했다. 98년에는 예술원 문학분과 회원이 됐다.

▼심사위원▼

▽산업기술부문 △위원장〓김상주(金商周) 서울대 명예교수 △위원〓문인형(文仁炯) 한양대 재료공학과 교수, 한송엽(韓松曄)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 허진규(許鎭奎) 일진그룹 회장

▽공공봉사부문 △위원장〓신일철(申一澈) 고려대 명예교수 △위원〓임희섭(林熺燮) 고려대 명예교수, 김상균(金尙均)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성이(金聖二)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문학부문 △위원장〓여석기(呂石基) 고려대 명예교수 △위원〓정명환(鄭明煥) 전 서울대 불문과 교수, 작가 박완서(朴婉緖)씨, 김화영(金華榮) 고려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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