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이웅평씨 별세…병든 이웃에 빛비추며 떠난 ‘자유의 전사’

  • 입력 2002년 5월 5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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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자신의 애기(愛機)를 몰고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던 귀순용사 이웅평(李雄平) 공군대령이 간기능부전증 악화로 4일 오후 10시15분경 숨을 거뒀다.

동서 냉전의 시기, 높디높은 분단의 사선을 과감하게 넘은 그이지만 간경화라는 병마의 벽은 결국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귀순한 지 석 달 만인 83년 5월 대한민국 공군 소령으로 군복을 갈아입은 고인은 북한 노동당 대신 남한을 선택했을 뿐 조국을 배반한 것은 아니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그러나 귀순 이후 남한 사회 적응 과정에서 맞닥뜨린 과도한 스트레스와 북한 근무 시절 즐겨했던 독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간경화 증세를 앓게 됐다.

이 대령은 공군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97년 11월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간이 굳을 대로 굳어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해 정맥 일부가 터졌던 것. 급히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이송된 이 대령은 고통스럽게도 세 차례나 식도정맥수술을 받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간 기능의 70% 이상이 상실됐다는 판정을 받은 것.

부인 박선영씨(39)의 간병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병세가 나아지지 않자 이듬해인 98년 10월 이 대령은 뇌사로 숨진 한 여성의 간을 이식받는 수술을 받았다.

이식수술 이후 한때 병세가 호전돼 자신의 투병생활을 담은 수기집을 펴내기도 했지만 이식 거부 반응이 발생해 올 3월 4일 다시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됐다.

한동안 수술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듯했던 이 대령은 “우리나라에서 남자가 여자의 간을 통째로 달고 다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서 “간이 여자니까 나도 여자야”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령은 결국 이식수술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 대령은 마지막 순간 자신의 수기 ‘기수를 삶으로 돌려라’의 수익금을 소아 간질환 환자들을 위해 써달라는 의사를 밝혔다.

이 대령은 또 투병 생활 중에서도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 남북관계 호전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자기일처럼 기뻐했지만 끝내 남북 통일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하늘로 떠났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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