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권위 아쿠타가와賞 교포작가 현봉호씨 선정

  • 입력 2000년 1월 15일 00시 01분


일본 최고 권위의 신인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의 수상자로 재일동포가 다시 선정됐다.

이 상을 주관하는 일본문학진흥회는 14일 재일동포 현봉호(玄峰豪·34)씨와 후지노 지야(藤野千夜·37)를 2000년 봄철 공동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재일동포 고단한 삶 그려▼

현씨의 수상작은 문학계 1999년11월호에 발표된 ‘그늘의 집’. 현재도 200여가구의 가설주택이 남아있는 오사카(大阪) 재일한국인 집단부락이 무대. 이곳에서 태어나 일본군으로 징용나갔다가 전쟁터에서 팔 하나를 잃고 다시 집단부락에 돌아와 홀로 생활하는 재일동포 노인의 고단한 삶을 치밀하게 그렸다. 흥분하지 않고 담담한 필치로 사회의 비정한 단면을 잘 부각시켰다는 것이 선정이유.

현씨는 수상소식을 들은 뒤 본보와의 전화회견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재일문학이 평가를 받은 것 같다”면서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반드시 재일동포에 관한 작품을 쓰겠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의 몸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이상 이 테마에서 완전히 자유스럽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미리 이어 4번째 영광▼

현씨는 1994년부터 주로 동인지에 현월(玄月)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전국적인 문학지에 작품을 게재하는 등 중앙문단에 등장한 것은 불과 2년전이다. 그러나 1998년에 발표한 ‘유방’이라는 작품이 지난 해에도 아쿠타가와상의 후보에 오르는 등 곧바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현씨는 소설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소설읽기를 좋아하다보니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스럽게 펜을 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일반 서민의 눈으로 바라본 내 주변 사회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오사카에서 재일동포 2세로 태어난 그는 고교를 졸업한 뒤 지금도 오사카에서 구두굽 가공공장을 경영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현씨는 이회성(李恢成·1972년) 고 이양지(李良枝·1989년) 유미리(柳美里·1997년)씨에 이어 재일동포로는 네번째로 이 상을 받게 됐다. 2000년대 첫 번째 수상자가 재일동포라는 점에서 재일동포 사회에도 적잖은 용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아쿠타가와상은 요절한 일본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를 기념하기 위해 1935년 창설된 순수문학상. 각 신문 잡지에 발표된 신진작가의 소설 및 희곡을 대상으로 매년 2회 시상한다. 기성작가에게 주는 나오키(直木)상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이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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