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재야」故 계훈제동지 영전에

  • 입력 1999년 3월 18일 08시 05분


46년 경성대 법문학부에서 처음 만난 학생 계훈제(桂勳梯)는 믿고 존경하고 사랑으로 다정하게 지낸 동지 중의 동지였다. 그와 거리를 같이 걷다 보면 점잖은 분들이 학생인 계형에게 정중한 자세로 인사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뒤에 알아보니 김구(金九)선생을 존경하는 분들로 계형을 ‘김구선생의 분신’이라고 칭찬했다.

계형은 누구하고도 잘 어울리고 협력했다. 항상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며 청렴 결백한 생활로 모범을 보인 애국 청년이었다. 그는 너무 순진해 불의를 용납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때론 과격한 사회운동가로 비쳐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형은 민족주의자이지 결코 좌경화된 사람은 아니었다.

나와 계형이 스승으로 모신 고 안호상(安浩相)박사님은 우리를 제자로 믿고 사랑으로 돌봐주셨다. 96년 안선생님께서 쓰신 회고록에 우리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 앞뒤에 이런 글을 쓰셨다.

‘해방 후 청년들 가운데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할 정도로 공산주의는 유행병이 되고 있었다. 그런 대단한 세력에 맞서자고 했으니 나도 어지간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때 우리 대학에 나를 따르는 학생 몇이 있었다. 오기형 계훈제…’

안선생님의 회고록을 의논하면서 계형을 만난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만나면 화제는 학창시절과 마찬가지로 늘 나라사랑, 동포의 화합, 남한 동포들 사이의 화합이었다. 그의 소원이 반드시 이뤄지리라 믿는다. 평생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계형. 이제 하늘 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오기형(前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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