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선생 문화주의 재조명]김학준/탄생 107돌맞아

  • 입력 1997년 5월 8일 20시 07분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의 현대 정치사에서 古下 宋鎭禹(고하 송진우)만큼 아깝게 일찍 세상을 뜬 지도자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해방 이후 그 어지러웠던 남한의 정국을 지조를 날(經)로 삼고 경륜을 씨(緯)로 삼아 미래지향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정치지도자가 바로 그였건만 해방으로부터 1백30여일만에 암살되고 말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민족의 불행이다. 그래도 다행스런 것은 고하의 민족주의적 민주주의자로서의 정치적 이념과 비전이 후대에 올수록 재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의 평생의 지론들 가운데 하나였던 문화주의는 「문화의 세기」가 될 것으로 예견되는 21세기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재평가되고 있다. 겉만 놓고 따지면 문화의 힘은 약해 보인다. 천군만마(千軍萬馬)가 질주하고 첨단 고성능 무기가 작렬할 때 문화는 설 땅이 없어 보인다.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 앞에 문화의 힘은 초라해 보이기조차 한다. 그러나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표현은 진부하다 해도 여전히 진리다. 양(洋)의 동서(東西)와 시(時)의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비록 더디다 해도 사람을 바꿔놓고 세상을 바꿔놓는 것은 약해 보이는 문화의 힘인 것이다. 고하의 생애 55년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 겨레를 외세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어려서부터 애국주의적인 교육을 받으며 컸던 그는 따라서 외세의 침탈에 대해 비분강개하게 반응하는 습성을 체질화했고, 이것이 그로 하여금 평생을 일본과의 타협을 거부한 민족주의자로서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그러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가졌던가. 고하는 민족주의의 길을 문화에서 찾았다. 일본 제국주의의 강포한 무력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우리 겨레의 대항력을 그는 일차적으로 교육과 언론과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운동을 통해 길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그의 문화주의는 문화주의를 3대 주지(主旨)의 하나로 제창하면서 창간한 동아일보의 기본정신과 일치하는 것이었고, 그 접합점 위에서 그와 동아일보 사이의 오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동아일보의 기사와 논설을 통해 동포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었지만 동아일보의 많은 사업들, 예컨대 「삼성사(三聖祀)건립운동」 「조선민립대학운동」 「조선물산장려운동」 「이충무공유적보존운동」 「문맹퇴치운동」 등을 통해 민족의 힘을 긴 안목에서 키워주고자 했다. 우리 한국은 가장 국제적이면서도 가장 민족적이고 가장 민족적이면서도 가장 국제적인 문화를 길러내야 한다. 그것의 성패 여부가 21세기 우리 겨레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고하 탄생 1백7주년을 맞아 재음미하게 된다. 김학준(인천대 총장)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