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당신은 왜 법조인이 되었는가?

  • 동아일보

전문가의 존재 이유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직업 규범 지키며 전문성 증명할 때 입증돼
검찰-사법개혁 ‘법의 지배’ 훼손할까 우려
신망 있는 법조인 나서 불안 덜 설명 해주길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당신은 왜 경제학자가 되었는가”라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냥 적당히 성적에 맞춰, 선생님과 부모님이 권유하는 대로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유학을 준비하던 친구로부터 미국 대학의 박사과정에 들어가면 학비와 생활비를 보조받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듣고, 그래서 한번 준비해 봤고 그렇게 유학을 가게 됐다.

내 박사 논문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실증 논문이었는데, 지도교수의 논문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었다. 힘들게 실증 분석을 끝냈지만 지도교수가 기대한 것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말할 수 없이 낙담했지만, 어쨌든 어렵사리 결과를 보고했다. 그때 그가 한 말이 학자로서 내 일생에 걸친 빛이 되었다. “네가 최선을 다해 얻은 결과는 데이터가 네게 전하는 메시지다. 다른 학자들을 위해 네가 그 메시지를 얻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것이 네 논문이다. 네 논문이 학문의 규범을 지키고 다른 학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게 학문의 세계에 들어왔고 교수가 되었다.

누군가가 내게 ‘당신은 왜 경제학자가 되었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질문을 받으면 나는 스스로에게 “너는 경제학자가 맞는가”라고 묻게 되고, 내 부족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정말 좋은 요리를 내놓은 요리사나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를 볼 때 ‘저 사람은 정말 전문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나는 오히려 부족한 나를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최근 안미현이라는 검사의 국회 증언과 이지영이라는 판사의 사법개혁 공청회 토론을 우연히 보고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그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 성격도, 실력도, 평판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영역에 있든 전문가라면 저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훨씬 어린 그들에게서 전문가로서의 자세를 배운다.

지금 여당 주도로 요란하게 진행되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 대해, 비전문가로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불안하다. 그 개혁이 다음 세대를 위해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이 되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문명사회 대원칙을 훼손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안미현 검사가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검찰개혁안 중 검찰의 보완수사권 박탈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설명하며 ‘입법권자가 져야 할 책임’을 언급하자 소란이 일었다. 그러면 “그런 부작용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좋은 안을 만들 것이며, 입법권자로서의 책임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정도로 응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의원은 검사의 건방진 태도를 문제 삼았지만, 나는 오히려 윗사람처럼 증인을 훈계하는 의원들의 태도에 더 기가 질렸다.

사법개혁도 11월 25일 더불어민주당 사법 정상화 태스크포스(TF)의 입법공청회에서 이지영 판사의 차례가 오기 전까지는 ‘괜찮은 개혁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 판사의 토론을 듣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TF의 안에 대해 “인사를 통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외부의 시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반론이 있었는데, 나는 그가 이 TF의 위원이면서 공청회의 사회자라는 사실에 놀랐다. 그에 대해서도 역시 잘 모른다.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을 보면 충분히 실력과 인격을 갖춘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물이라 생각한다. 그는 2017년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당시 대선에 출마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대해서는 당선되더라도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같은 상황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서는 입장 밝히기를 거부했다. 법학자로서 옳은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정치와 무관한 공정함으로 법조계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TF의 개혁안에 더 쉽게 설득됐을 것이다.

나는 안 검사와 이 판사가 왜 법조인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도 ‘왜 법조인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스스로에게 “내가 과연 법조인인가”를 묻게 되지 않을까? ‘법의 지배’라는 대원칙이 무너진 사회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게 될까 두렵다. 그렇지 않다고, 지금의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 법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신망 있는 법조인이 말해주면 좋겠다. 이제 연말이고 법조인들도 송년회를 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서로에게 한번 물어보면 좋겠다. “당신은 왜 법조인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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