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문병기]실용외교에도 내 편은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23일 23시 15분


문병기 정치부장
문병기 정치부장
이재명 정부가 내건 외교 노선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다. 국익을 외교의 목표로 내세우지 않은 적이 없지만, 윤석열 정부의 외교 기조인 ‘가치외교’와 비교하면 실용외교의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진다.

가치외교는 ‘가치를 공유한(shared-value)’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기치를 담은 외교 노선이었다. 미중 갈등 구도에서 내 편, 네 편을 구별해 원칙에 따른 외교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실용외교는 두루 잘 지내는 게 이익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안보와 경제적 실리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서는 것을 피해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동북아 발화점 된 중일 갈등


실용외교를 위해선 전략적 자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택을 강요받거나, 누구 편인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하는 순간을 미루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이 있어야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취임 후 6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재명 정부의 외교는 한미 관세 협상에 발이 묶였다. 취임 직후부터 가동된 대미 외교는 이달 14일 발표된 한미 관세안보 팩트시트를 통해 비로소 첫 성과물을 냈다. 실용외교를 위한 첫 단계가 일단락된 셈이다.

중동·아프리카 순방이 끝나면 이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행보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11년 만의 방한으로 성사된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중국과의 전면적 관계 복원을 선언했다. 정부는 이 대통령의 조기 방중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어렵게 열린 한중 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APEC을 통해 확보한 외교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일 갈등은 동북아 긴장을 고조시키는 새로운 발화점이 되고 있다. 대만 문제로 시작된 갈등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로 확산됐다. 식품 제재로 시작된 중국의 경제 제재가 미중 무역협상의 핵심인 희토류 통제로 이어지면 미국도 더는 상황을 외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물가 안정을 위해 중국과의 휴전을 유지하고 싶어 하지만 미국의 전략적 이익은 중국 견제에 있다. 반면 중국은 수출통제 확대로 경제적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일본은 중국이 아시아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는 것이 최대 목표다. 미국,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북한과 러시아까지 근본적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선 중일 갈등이 대형 악재로 번질 가능성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중 관계 신중한 접근 필요

중일 갈등이 한국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중국은 최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비판하며 한국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미일 협력을 우려하는 중국이 적극적으로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 한중 관계 완전 복원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핵추진 잠수함과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 중국이 주시하는 한미 간 전략적 협력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가운데, 부주의하게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가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한 주한 외교관은 실용외교에 대해 “모두와 잘 지내는 것과 우유부단한 외교정책은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용외교에도 내 편은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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