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발견[이준식의 한시 한 수]〈309〉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7일 23시 00분


산 아래 난초 싹 오종종히 개울에 잠기고, 솔밭 사이 모랫길 흙도 없이 정갈한데,
쓸쓸한 저녁 비에 소쩍새 운다.
그 누가 인생은 다시 젊어지지 않는다 하는가, 문 앞 개울물은 외려 서쪽으로 흐르거늘, 백발이 다가와도 제발 ‘누런 닭 새벽을 재촉하네’라 노래하지 마시라.
(山下蘭芽短浸溪, 松間沙路淨無泥, 蕭蕭暮雨子規啼. 誰道人生無再少, 門前流水尚能西, 休將白髮唱黃雞.)

―‘완계사(浣溪沙·산 아래 난초 싹 오종종히 개울에 잠기고)’ 소식(蘇軾·1037∼1101)


이 노래에는 ‘기수(蘄水) 청천사(淸泉寺)로 놀러갔더니 절 곁 난계(蘭溪)의 물이 서쪽으로 흐르더라’는 서문이 달려 있다. 예부터 중국은 지형이 서고동저(西高東低)라 모든 하천이 동류(東流)한다고 여겼다. 한데 이 개울은 뜻밖에도 서쪽으로 역류하고 있다. 오호, 이 반가운 경이! 세상 이치가 이럴 수도 있구나. 인생이 꼭 늙어만 가는 건 아닐지니 새벽 닭의 울음에 탄식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시인으로선 ‘소쩍새 우는 쓸쓸한 저녁’이 홀연 상큼해졌을 것 같다.

‘누런 닭’의 비유는 당대 백거이의 발명. 그는 ‘누런 닭 새벽을 재촉하여 축시(丑時·오전 1∼3시)에 울고, 밝은 해는 한 해가 저무는 걸 재촉하여 유시(酉時·오후 5∼7시) 전에 사라진다’(‘취가·醉歌’)라는 시구를 남겼다. 닭이 새벽에 울고, 해가 일찍 저무는 현상을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에 비유한 것이다. 동파는 역발상으로 닭과 해의 움직임에 조바심치거나 백발을 한탄만 하지는 말라고 낙관한다. ‘완계사’는 곡명.

#완계사#경이로운 발견#이준식의 한시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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