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이 3개월 지났다. 산업부 기자의 시각에서 조금은 이르지만 올해 우리 산업계 키워드가 무엇일지 생각해 봤다. 최근 한국 산업계의 뉴스 메이커는 인공지능(AI)도, 반도체도, 배터리도 아닌 이웃 나라 ‘중국’일 것이다. 한국 신문 경제면에 중국 첨단 기술 기사가 등장하는 일이 올 들어 반복되고 있다.
기업 임직원들이 느끼는 중국발 위협은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 엄중하다. “중국이 처음엔 사람을 투입하는 ‘인해(人海·사람의 바다)전술’을 쓰더니, 그다음엔 돈을 퍼붓는 ‘전해(錢海·돈의 바다)전술’을 쓰더라. 지금은 새로운 기술을 내놓는 ‘기해(技海·기술의 바다)전술’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최근 만난 한 전자기업 임원의 말이다. 그의 말 속에는 1990년대 이후 2025년 현재까지 변화하는 중국 기업의 속성이 압축돼 있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기업이 상대하기 더 까다롭게 바뀌는 중이다.
올 초 중국의 행보를 보면 “바다처럼 많은 기술로 적을 공격한다”는 ‘기해전술’이 과장만은 아닌 것 같다. 첫 신호탄은 1월 중국의 생성형 AI 딥시크였다. 미국 챗GPT 개발비의 5.6%만 사용하면서 그에 필적할 제품을 만들었다. 미국에선 “AI에서 (적국에 뒤지는) ‘스푸트니크 순간’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이후 8년간 진행했던 ‘칩 워(Chip War·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무력화되는 신호도 감지된다. 화웨이는 올 들어 미국 엔비디아가 제조하고 있는 AI 칩 ‘H100’과 비슷한 성능의 ‘어센드910C’를 양산했다고 밝혔다. 전기차 기업 비야디(BYD)는 5분 만에 전기차를 완전 충전할 수 있는 ‘슈퍼 e플랫폼’ 기술을 발표했다. 두 건 모두 아직 100% 검증된 건 아니지만 발표대로라면 글로벌 기술 흐름 자체를 바꿀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대응은 둘 중 하나로 보인다. 중국이 쫓아오지 못한 분야에서 미리 초격차를 내거나, 핵심 시장에서 직접 맞붙는 것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가 HD한국조선해양이다. 이 회사는 컨테이너 상선에 소형모듈원전(SMR)을 장착해 원자력으로 움직이겠다는 대담한 연구개발(R&D)에 나섰다. 후발 중국 조선소들의 추격을 근본적으로 뿌리치려면 그 정도 상상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후자로는 LG그룹의 LG AI연구원이 있다. 이곳은 최근 국내 첫 추론형 AI ‘엑사원 딥’을 공개하면서 미국 수학 올림피아드 등에서 딥시크에 뒤지지 않는 결과를 내놨다. AI를 미국, 중국이 선점했지만 LG AI연구원 역시 2020년 이후 축적한 ‘내공’을 산업 현장에서 펼칠 예정이다. 이 같은 결과물들을 쌓아둬야 중국발 기술이 한국에 밀려올 때 한국 산업의 미래를 비추는 등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 기업들의 대응이 개별 기업의 ‘창의적 결단’에만 의존한다는 점이다. 중국 위협이 가시화된 석유화학, 철강 등부터 연합 R&D나 공동 생산 대응에 나서는 건 어떨까. 도요타, 소니 등 8개 대기업이 연합해 반도체 생산에 나선 일본 라피더스 사례를 한국 산업계가 분석해 볼 시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