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할마 할빠들의 육아휴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1일 23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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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가정에 조부모는 든든한 육아 지원군이다. 집 근처에 아이들 할머니가 사는 경우 엄마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4∼10%포인트 상승하고,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 아이의 생존 확률과 학교에 다니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해외 연구도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신년호에서 15억 명으로 급증한 전 세계 조부모 인구가 ‘조부모 시대’를 열며 어린이 복지와 여성의 사회 진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에서도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면 금수저, 시어머니가 봐주면 은수저라는 ‘워킹맘 수저론’이 있다. 정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워킹맘의 10.5%가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금수저, 은수저들이다. 가구 소득이 월 700만 원이 넘는 고소득층은 그 비율이 13%로 더 높다. 급할 때 잠깐 맡기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조부모 의존 비중은 40%까지 올라간다. 손주를 엄마 아빠처럼 돌보는 할마(할머니+엄마)와 할빠(할아버지+아빠)들은 “인생은 80부터”라며 황혼 육아에서 벗어날 날을 고대한다.

▷손주 돌봄 대가로 정기적인 현금을 받는 경우는 40%밖에 안 된다. 정기적으로 받는 경우 월평균 액수는 73만 원. 육아 시간이 하루 평균 6.8시간, 조부모들이 육아에 투입한 노동 가치가 2019년 3조 원을 넘겼다는데 대부분 무료 봉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조부모 돌봄 수당을 신설하는 추세다. 서울은 생후 24∼36개월 아이 한 명은 30만 원, 두 명은 45만 원, 세 명은 60만 원을 준다. 중위소득 150% 이하 가구로 월 40시간 이상 아이를 돌보는 조건이다.

▷조부모에게 육아휴직을 주는 나라도 있다. 호주의 조부모 육아휴직은 무급인데 주 보호자인 경우엔 양육비도 지원한다. 헝가리는 육아휴직을 쓰는 조부모에게 월 123만 원을 준다. 핀란드는 부모가 돌볼 수 없는 경우 육아휴직 급여를 실제 아이를 보는 사람에게 지급한다. 일본은 기업과 지자체별로 조부모 육아휴직제를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엔 우리 정부도 조손 가정이나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 집에서 크는 경우에 한해 조부모 육아휴직제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조부모 육아 수당은 다들 찬성하는데 육아휴직제에 대해선 조부모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것 아니냐며 여론이 갈린다. 황혼 육아를 하면 인지 기능과 삶의 만족도는 높아지는 반면 손목 허리 무릎 관절이 모두 아픈 ‘손주병’으로 병원은 자주 가게 된다고 한다. 부모만 쓸 수 있도록 돼 있는 육아휴직 제도를 유연화할 필요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는 부모가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자식 농사 끝낸 사람에게 자식의 자식 농사까지 지으라 부담을 줄 수는 없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맞벌이 가정#조부모#육아 지원군#조부모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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