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쇳물로 여는 新철기시대[기고/이창양]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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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알자스로렌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이 지역 주민들은 국적이 네 차례나 바뀔 만큼 프랑스와 독일의 영토 분쟁이 극심했던 곳이다. 풍부하게 매장된 철광석이 분쟁의 원인이었다. 오늘날 산업 강국으로 도약한 나라들은 모두 탄탄한 철강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1973년 포항제철의 영일만 고로(高爐·용광로) 가동으로 시작된 우리 철강 산업은 제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면서 대표적인 수출 산업으로 성장해 왔다.

최근 우리 철강 산업은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업종인 철강 산업이 세계적으로 탄소 감축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수입 철강에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미 유럽, 일본 등 주요 경쟁국들은 철강 생산의 탄소 저감 경쟁에 돌입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가려 상대적으로 관심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철강 산업은 ‘산업의 쌀’로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만큼 국가전략 산업으로 적극 육성해 나가야 한다. 당면한 도전에 맞서 우리 철강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탄소 다배출 산업에서 저탄소 친환경 산업으로, 범용재 중심에서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환골탈태하는 것이다.

첫째, 저탄소 철강의 핵심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 철강 산업 탄소 배출의 70%는 석탄을 사용하는 고로에서 발생한다. 석탄을 수소로 대체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철강 산업 탄소 저감 경쟁의 ‘게임 체인저’ 기술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대규모 실증을 통해 빠른 시일 내 상용화해 나갈 것이다.

둘째,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요 둔화 극복을 위해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고도화 노력이 필요하다. 고성능 전기자동차를 위한 고경량·고강도 강판, 액화천연가스(LNG)나 액화수소의 초저온을 견딜 고망간강 등의 최고급 제품 개발을 지원하고, 자동차 등 수요 업계와 철강 업계 간의 협력 체계도 강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전기로 활용 확대를 통해 탄소 저감 경쟁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질의 철스크랩(고철) 공급이 관건이다. 현재 철스크랩은 폐기물로 취급되어 각종 규제의 대상이 되고, 품질 검증 등 인프라가 미비한 실정이다. 정부는 철스크랩이 친환경 시대의 핵심 자원으로 거듭나도록 유통 및 품질검증 체계 개선 등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

올 2월 정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철강 산업 발전 전략’을 발표하고 업계와 ‘철강 생산 저탄소화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업계와 정부는 철강 산업의 재도약을 위해 줄탁동시(啐啄同時)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다짐이다. 50년 전 영일만 고로의 첫 출선이 산업 발전의 신호탄이었듯이, 수소환원제철로 만든 깨끗한 쇳물이 친환경 시대 새로운 산업 발전의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깨끗한 쇳물#新철기시대#철강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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