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뭘…[삶의 재발견/김범석]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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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지구상에 70억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있다 보니 별별 사람들이 많다. 환자도 마찬가지여서 수많은 환자들을 보다 보면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환자도 있다. 그날도 그랬다. 환자 한 분이 ‘다른 환자가 자기 순서에 새치기를 했다’며 직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면서 그 다른 환자와 싸우고 온 병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한바탕 진을 빼고 난 뒤 다음 환자가 들어왔다.

“선생님, 조금 전 그 환자 때문에 많이 곤혹스러우셨지요?”

“아니에요. 간혹 있는 일이에요.”

“아까부터 어찌나 소리를 질러대던지…. 제가 옆에서 다 봤는데, 앞사람이 새치기한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새치기했다고 혼자서 우기고 버럭버럭 화를 내더라고요.”

“그랬군요.”

“제가 암에 걸리고 나서 깨달은 것이 있어요. 암에 걸리고 나니 다른 일들이 대수롭지 않더라고요. 설령 새치기했다 하더라도 5분 더 기다려 봐야, 그게 뭐 대수라고….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리기도 하는데요 뭐. 한두 시간 기다려야 하면 스마트폰으로 영화 한 편 보면 돼요.”

사실 우리는 일주일 전에 무엇 때문에 화를 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1년 전에 무슨 고민이 있었는지는 기억조차 못한다. 당시에는 그렇게 화를 내고 죽을 듯이 고민해도 1년, 아니 일주일만 지나도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때 내가 왜 화를 냈더라? 그때 내가 무엇 때문에 고민을 했더라? 기억조차 못 한다. 그 환자분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도 옛날에는 한 성격 했어요. 그런데 암에 걸리고 나니 뭐 그런 것쯤이야 싶어지더라고요.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살게 되더군요. 웬만큼 큰일이 생겨도 막상 죽고 사는 문제까지는 아니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살아 있는 게 어디예요. 이 정도면 ‘땡큐’죠. 주위에서 저 보고 이 사람이 왜 이러지, 죽을 때가 다 되었나 이럽디다. 설령 암 때문에 진짜 죽고 사는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뭐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환자분은 죽기밖에 더하겠냐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다. 한 걸음만 물러서서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에 우리는 죽기 살기로 매달리곤 한다. 막상 일주일만 지나도 왜 그랬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을 가지고.

그래서 생각해 본다. 간혹 일이 뜻대로 안 풀리거나 화가 날 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뭘….’ 그러면 상황에 대한 객관화와 선 긋기가 되면서 부정적 감정에 덜 휘말리게 된다. 그 후에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없어지는 마법 같은 일이 당신에게 일어날 것이다. 화가 나고 답답하면 간간이 한 번씩 떠올려 보자.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뭘….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화 날 때#죽고 사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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