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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정치화 못지않게 위험한 외교안보의 산업화[광화문에서/신진우]

입력 2022-12-02 03:00업데이트 2022-12-0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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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우 정치부 차장신진우 정치부 차장
“좀 놔뒀으면 좋겠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서 요직을 거친 외교 당국자의 얘기다. 문재인 정부 때 그는 ‘북한’ ‘통일’에 꽂힌 청와대의 노골적인 압박에 몸서리쳤다. 그런 그가 요즘 다시 신경질적인 자신을 발견하곤 한단다. “용산 그곳(당국자의 표현)”의 은근한 압박이 잦아져서다. 작은 외교 행사 하나 기획할 때도 ‘경제’ ‘산업’ ‘통상’ 키워드부터 매번 따지는 게 정상이냐고 그는 반문했다.

확실히 윤 대통령의 “경제를 살리자” 메시지는 요즘 날이 섰다. 지난달 수석비서관회의에선 “모든 순방은 한미일 안보협력 등 긴요한 국가 안보사항을 제외하고 기업들의 비즈니스 이슈에 맞춰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10월 생중계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선 전 부처가 산업부란 자세로 임해 달라고 주문했다. 마무리 발언에선 “국방부는 방위산업부로 뛴다는 자세로 일해 달라”고 방점까지 찍었다.

이런 절박함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올해 연간 무역수지는 14년 만의 적자가 확실시된다. 내년 1%대 성장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에서 수출까지 힘겹다 보니 대통령이 조급해할 만하다.

문제는 메시지 관리다. 요즘 관가에선 ‘전 부처의 산업부화’ 취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하란 건진 모르겠단 말이 자주 들린다. 통상(通商) 업무에 잔뼈가 굵은 관료는 “세부 로드맵까지 빈틈없이 짠 뒤에야 큰 방향을 말할 수 있는 분야가 경제통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너(대통령)가 급한 마음에 메시지부터 내고 보면 밑에 관료들은 그 메시지에 꽂혀 진짜 할 일을 뒷전으로 미룬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외교안보 사안에까지 경제 기조가 무리하게 주입된다는 데 있다. 전 세계가 총성 없는 경제안보 전쟁을 치르고 있다지만 경제 기조를 외교안보 이슈에 무리하게 접목하면 재앙을 부른다. 목적과 가치가 뚜렷한 외교안보 사안들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히면 나라를 지탱하는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단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등 이념에 치우친 정치색을 무리하게 덧칠해 외교안보의 나침반을 흔든 적이 많았다. 실속도 제대로 못 챙겼다. 바통을 이어 받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선 후보 당시 미국 상원의원을 만나 “일본에 한국이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협약’을 통해 승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교적 결례란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김의겸 대변인은 한술 더 떴다. 지난달 주한 유럽연합 대사를 만난 뒤 “‘윤석열 정부에는 대화 채널이 없어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대사가 말했다”고 발표했다가 ‘거짓’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사는 김 대변인이 전한 발언이 사실과 다르단 취지로 외교부에 직접 해명까지 했다.

대통령실이 주도하는 ‘외교안보의 산업화’는 이런 ‘정치화’ 못지않게 위험하다. 외교안보는 묵직함과 신중함이 특히 요구되는 필드다. 대통령이 “국방부는 방위산업부”라고 툭 던진 한마디로 안보 최전선에 있는 누군가는 당연한 우선순위를 당연하지 않게 인식할지 모른다. 그 책임은 누가 질 건가.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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