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한규섭]글로벌 기업 유치경쟁, 韓美 의회의 다른 모습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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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도체법·인플레법 통과로 제조업 강화
공장 유치 강조되자 韓 기업들, 美 투자 확대
韓 국회도 기업투자 유도 위해 변해야 한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지난달 12일 미국 연방 하원이 미국 내 생산 전기차와 수입 전기차를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세제 혜택 조항을 골자로 하는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이하 인플레법)을 통과시켰다. 안보의 차원에서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획기적으로 지원하는 반도체법에 이은 제2탄이다. 심지어 미 상무부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이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모든 외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대외적으로 미 정부의 이러한 행보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좌절시키는 것이 목적이겠으나 대내적으로는 중간 선거를 앞둔 민주당이 미국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2018년 대선에서 소위 ‘러스트 벨트(Rust Belt)’를 포함한 경합 주(州)들을 내주며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패배했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미국 내 여론도 호의적이다. 실제로 반도체법과 인플레법 통과 후 조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 중이다. 과거 조사이긴 하나 2014년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유권자들의 20%만이 ‘무역이 국내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답한 반면(한국은 53%) 다수인 75%(한국은 73%)는 ‘해외 기업이 국내에 공장을 짓는 것이 미국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대체로 미국 여론이 해외 기업의 자국내 공장 건설에 대해 특히 호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여러 주 정부도 경쟁적으로 한국 기업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가 약 20조 원 규모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공장을 짓는 텍사스주 테일러시는 10년간 90% 이상의 재산세 감면을 약속했다. 텍사스주도 2700만 달러(약 370억 원) 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한다.

LG에너지솔루션도 이미 운영 중이거나 운영을 시작할 예정인 오하이오주, 테네시주, 미시간주 공장에 이어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으로 미시간주 랜싱시에 미국 제4공장을 건설한다. SK이노베이션도 조지아주에 1·2공장을 운영 중이며 포드와 합작으로 테네시주와 켄터키주에 역대 최대급 배터리 생산 공장 및 연구시설을 건설할 예정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19일 금년도 국정감사 일정이 발표됐다. 이번 국정감사에도 기업인들의 증인 출석이 예상된다. 언제부터인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국정감사는 국회의원들이 경쟁적으로 기업 임직원들을 불러내 호통치고 망신 주는 경연장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자신의 지역구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국정감사라는 도구로 기업 팔 비틀기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이 ‘능력자’ 국회의원으로 인정받는 길이란 인식이 팽배한 듯하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국정감사 시즌만 되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업 추진을 주저하게 되어 경영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연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하여 오너를 포함한 기업의 임직원들을 야단칠 자격이 있을까. 필자는 지난해 6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당시 주요 대선 후보와 정당, 그리고 주요 기업에 대한 호감도를 0에서 100점 사이로 물었다.

국정감사에서 ‘감사’를 담당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각각 평균 45.4점과 45.2점을 얻어 평가 대상 중 가장 낮은 호감도를 기록했다. 대선 후보로 거론된 이재명, 윤석열 후보에 대한 호감도도 52.7점과 49.8점 정도였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호감도도 49.4점에 불과했다. 반면 오히려 잠재적 ‘피감자’로 야단을 맞아야 할 대상인 삼성은 77.4점, 현대자동차는 68.4점, 네이버는 58.3점, 쿠팡은 57.8점을 얻어 정치권 인사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 초기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는 베트남에서 열린 ‘한국-베트남 인재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포럼의 주제는 ‘한강의 기적을 홍강의 기적으로’였다. 이 자리에서 베트남 고위 인사들이 하나같이 한국의 산업 발전 모델을 칭송하고 당시 정부·여당이 대표적 ‘적폐’로 지목했던 베트남 진출 대기업들에 감사를 표하는 바람에 운동권 출신의 한국 정부 측 참석 인사들이 머쓱해졌다. 해외에서 대한민국의 대표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민주 투사도 아닌 기업인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비호감 국회의원들이 상대적으로 신뢰받는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호통치고 윽박지르는 ‘이상한’ 장면을 보고 싶어 하는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기업의 위법 행위에 대한 심판은 공정거래위원회와 사법부가 하면 된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글로벌 기업#유치경재#제조업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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