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형준]‘복합위기’ 극복을 위한 조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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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에게 위기를 솔직하게 알리고
대통령 앞에서도 전문가 신념 지켜야

박형준 경제부장
박형준 경제부장
“경제 분야에서 30년 일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위기다.”

한 경제연구소의 부사장급 인사의 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로 인한 공급망 교란, 유가 폭등…. 통제할 수 없는 해외 요인이 한국 경제를 덮치고 있다. 거기에 물가 급등, 무역수지 적자, 금리 인상 등 국내 문제도 만만치 않다. 연일 주가는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은 치솟는다. ‘복합위기’다.

깜깜한 터널 속에서 어떻게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과거 한국 경제의 위기 사례를 참고 삼아 들여다봤다.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지금처럼 한국 증시와 원화 가치가 연일 하락했다. 그해 연간 물가 상승률은 4.7%로 치솟았다. 불을 끌 소방수로 2009년 2월 윤증현 당시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이 새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기재부 출입기자였던 필자는 윤 장관의 취임 기자회견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그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 내외에서 ―2.0%로 과감하게 낮췄다. 일부 기재부 당국자는 “그래도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마이너스’ 언급만큼은 피해야 한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 장관은 “국민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그 이후 약 1년간 신문은 ‘위기’ ‘사상 최악’ ‘도산’ 등 단어로 도배됐다. 국민들은 경각심을 가졌고 위기 극복에 동참했다. 만약 정부가 1997년 외환위기 직전처럼 “경제 펀더멘털은 좋다”며 달콤한 발언만 내놨다면 2010년 한국 경제의 퀀텀 점프(성장률 6.5%)는 없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던 1979년 이야기다. 그해 초 청와대에서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이 농가주택 개량사업 업무보고를 했다. 애초 9만5000호를 개량하려다 그 규모를 3만 호로 줄였다.

“나도 농촌 출신인데 더 투자합시다.”(박정희 전 대통령)

“각하, 경제의 안정구도를 갖고 나가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시멘트를 비롯한 건설 자재값과 건설 임금 상승, 그리고 재정 부담 때문에 축소가 불가피합니다.”(신현확 전 경제기획원 장관)

“그래도 6만 가구는 해야 하는 거 아니오?”(박 전 대통령)

“안 되겠습니다.”(신 전 부총리)

그날 이후에도 대통령과 장관의 농가주택 논쟁은 이어졌고, 심지어 박 전 대통령이 “내가 농업 개발에 대한 집념이 있는데, 당신이 내 집념을 꺾을 작정이냐”고까지 몰아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신 전 장관은 신념을 꺾지 않았다. 오일쇼크의 위기 속에 ‘성장’을 추구할 게 아니라 ‘안정’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경제 전문가로서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해 봄 경제기획원은 중화학공업 축소 및 조정, 새마을운동 지원 축소, 수입 개방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안정화 종합시책’을 내놨다. 성장 지상주의자였던 박 전 대통령의 심기는 불편했겠지만 이 정책으로 치솟던 물가는 떨어졌고, 1981년 한국 경제는 다시 반등할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팀도 최근 성장률 전망을 대폭 낮추고, 물가 전망은 2배 이상으로 올리며 연일 위기 경고음을 내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앞에서 신념 있는 목소리를 내는지는 의문이다. 지방선거 직전에 결정된 62조 원의 사상 최대 추가경정예산이 물가를 더 부채질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1979년 상황은 ‘신현확의 증언’(신철식, 2017년)을 참고했습니다.

박형준 경제부장 lovesong@donga.com
#복합위기#극복#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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