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돌아갈까요?[동아광장/김금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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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벨 문학상 구르나의 소설 접해
두 망명자 과거 돌아보며 삶 재정립 과정
엔데믹, 삶 되찾으리란 기대 나오는 사월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적어도 안전하길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사월은 늘 어딘가 황망한 기분이다. 우선 날씨가 변덕스럽다. 이번에도 어느 날은 더워서 땀을 흘리다가 어느 날은 추워서 세탁을 다 해놓은 점퍼를 다시 찾아 입었다. 확진자 수가 정점에 이르면서 막막함을 더해가더니 사월 말인 지금 이제 코로나는 홍역, 수두와 같은 2급 전염병이 되었다.

그런 사월을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장편소설을 읽으며 보냈다. 구르나는 탄자니아 출신 영국 작가로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다. 80년대부터 영국 켄트대의 영문학 및 탈식민주의 교수로 재직하며 열 권의 장편소설을 썼지만 정작 그의 작품은 영국 외의 국가에서는 거의 출간된 적이 없다고 한다. 한국에도 번역된 작품이 없는데, 다음 달 출간을 앞둔 장편소설의 추천사를 의뢰받아 미리 읽어볼 수 있었다. ‘바닷가에서’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잔지바르 혁명 전후의 동아프리카에서 출발해 냉전 시기의 유럽을 거쳐 오늘의 영국에 이르는 긴 시간을 살아낸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프리카인, 유럽인, 아랍인, 페르시아인, 인도인 같은 다양한 인종이 공존했던 동아프리카의 섬 잔지바르(현 탄자니아)에는 왕성한 교류가 만들어낸 혼종의 문화가 있었고 그런 그들이 꿈꿨던 부와 욕망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때가 되면 수평선 너머로 교역할 물건을 싣고 나타나는 이국의 배들처럼, 욕망은 식민의 역사가 더해갈수록 강렬해졌고 그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삶의 면면들도 뚜렷했다. 하지만 이러한 불행의 날들마저도 작가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형상화 속에 애틋한 아름다움을 획득하는데,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인도양을 통과해 동아프리카로 불어오던 바람, 시장을 채우고 있는 진귀하고 이질적인 물건들과 함께 상륙한 그 매혹과 혼란의 시간들이 생생하다.

‘바닷가에서’를 읽는 것이 의미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소설의 현재적 진행이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졌다는 데 있었다. 소설의 두 주인공은 삼십여 년의 차를 두고 망명자가 된 잔지바르인들로, 둘은 고향에서 서로를 끝 간 데까지 모는 대립과 갈등 속에 놓여 있었던 관계다. 그러다 어린 망명자는 십대 때 유럽으로 건너가 고향에서의 일과 가족들을 지웠고, 오랜 시간이 지나 자기가 떠난 이후의 잔지바르에 대해 증언해줄 또 다른 망명자를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대화를 해나가기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곳에서의 기억을 지우거나 부정하지 않고 찬찬히 되돌아보며 자기 삶을 재정립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자신과 완전히 반대편에 서있었던, 바로 그 적의의 대상이라는 아이러니가 소설을 인간적 삶의 진실로 이끈다.

엔데믹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 우리가 누리지 못한 삶을 되찾으리라는 기대가 나오는 사월,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를 살펴보는 마음이 편치는 않다.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이고 한국에서는 어느 때보다 타인에 대한 적의와 적대가 넘실댄다. ‘바닷가에서’의 배경이자 작가 구르나의 고향인 잔지바르가 돌이킬 수 없이 황폐화된 것은 아프리카인과 그 외의 모든 이들을 가르고, 지금껏 이웃으로 살아온 이들을 제거와 축출의 대상으로 여기는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런 ‘나쁜’ 가치 속에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적대가 양산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이야기하는 데도 모멸과 적대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는 오늘은 그런 사람이 내가 아니지만 내일은 내가 될 수 있고 결국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곳이 된다. 하지만 엔데믹 이후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적어도 안전만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서로의 안전을 위해 치렀던 대가를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새 삶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바닷가에서’ 속 주인공들과 같은 처지일지도 모른다. 낯선 공항에 도착해 불안한 마음으로 출입국사무소 직원 앞에 서서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말해야 하는 사람들 말이다. ‘바닷가에서’의 인물들은 그렇게 낯선 땅으로 인계된 후에도 타자와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것이 그들을 구해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 답을 위해서라도 이 소설을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삶 재정립 과정#엔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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