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청동거울 명품으로 뜨자, 동유럽서도 가품 활개[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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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사람들은 흔히 물건의 가치를 평가할 때 진품 여부를 가장 먼저 따진다. 진품명품이나 ‘전당포 사나이’ 같은 골동품의 값을 매기는 프로그램에서도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진품 여부다. 이 진품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무한정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사회가 도래했어도 여전하다. 오히려 디지털로 만들어지는 인터넷상의 파일도 ‘대체불가토큰(NFT)’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거래되고 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진품을 좋아할까. 정말 모방한 것은 천대받고 쓸모없는 것일까. 사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작품을 모방하며 살아왔다. 고고학이 전하는 진품과 가짜의 기원과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흉노 조공에 가품 보낸 한나라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유방)는 백등산에서 흉노의 강력한 군대에 치욕적인 패배를 기록했다. 그리고 약 200년간 북방의 오랑캐에게 굴욕적인 조공과 공물을 매년 바쳐야 했다. 역사 기록에도 당시 한나라가 매년 바친 목록들이 남아 있다. 그 목록은 공녀는 물론이요, 진기한 과일과 고급술의 목록이 정말 자세하게 적혀 있다. 약간이라도 소홀하면 화를 겪을까 두려워하던 중국 조정의 걱정과 꼼꼼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 발굴을 해보니 흉노인들이 진짜 좋아하던 중국제 물건은 따로 있었다. 바로 칠을 한 그릇이었다. 중국의 칠그릇은 나무를 깎아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옻칠을 한 것이다. 양쪽 주둥이에 손잡이가 달렸고 가볍다. 마치 일회용 컵처럼 포개서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니 유목민들에겐 안성맞춤이다. 말을 타고 사방을 다니는 흉노인은 때가 되면 중국에서 받은 고급술과 이 잔을 부하들에게 하사하며 충성심을 다졌다.

흉노의 왕족고분에서 발견된 한나라의 칠기 그릇(위). 그릇 바닥에는 한나라의 궁궐인 ‘상림(上林)’이란 글씨가 쓰여 있지만 가품 가능성이 크다. 강인욱 교수 제공
흉노의 왕족고분에서 발견된 한나라의 칠기 그릇(위). 그릇 바닥에는 한나라의 궁궐인 ‘상림(上林)’이란 글씨가 쓰여 있지만 가품 가능성이 크다. 강인욱 교수 제공
흉노에게 보내는 칠기는 중국 안에서도 최고급 명품이었다. 흉노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모든 칠기 그릇의 바닥에는 황실 직속의 공방에서 만든 것을 증명함은 물론이고 그 제작을 담당한 6명의 장인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제작 과정에서 문제가 있으면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그런데 노용울이라는 흉노의 왕족고분에서 한 칠기 그릇이 발견되었는데, 자세히 조사해 보니 뭔가 이상했다. 얼핏 보면 다른 그릇과 비슷했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 색깔이나 마무리의 흔적이 좀 떨어져 보였다. 그 그릇의 뒷면에는 역시나 실제 제작에 참여한 장인이 다른 것의 절반인 3명만 적혀 있었다. 그리고 휘갈겨 쓴 글씨로 당시 한나라의 궁궐인 ‘상림(上林)’이라는 글자가 함께 적혀 있었다. 이 칠그릇은 사제 공방에서 납품한 일종의 가품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흉노가 한나라에 매년 요구하는 조공의 물량이 엄청나서 한나라의 재정에 막대한 피해가 갔다. 때로는 제때 공급을 못 하는 경우도 일어났다. 그러니 황실의 공방이 아니라 사제 공방에 하청을 주고 납품을 받은 것이다. 그러는 중에 가품을 진품과 섞어서 흉노에게 납품을 한 것이다. 어쨌든 이 사제 공방에서 만든 칠기 그릇을 적절히 섞어 주면서 한나라는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200여 년간 별 탈 없이 흉노에게 조공을 하여 안심시킨 끝에 결국 한무제 때에는 대대적인 반격을 가해서 흉노를 몰아낼 수 있었다. 가히 중국을 구한 가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韓도 모방한 中 청동거울

적절하게 모방을 한 것은 그 물건이 널리 사용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남한에서는 고조선이 멸망한 직후 중국과 직접 교역하게 되면서 중국의 귀중품들이 크게 사랑받았다. 이때에 삼한의 우두머리들은 중국에서 사온 관리의 옷과 도장, 그리고 중국제 명품을 쓰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그런 귀중품을 몸에 걸치고 의식에 참여하면 자신이 마치 중국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인 양 과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 한나라에서 유행한 청동 거울은 한국과 일본, 멀리 동유럽에서도 인기였다. 진품을 모방한 ‘모방 거울’ 제작도 활발했다. 강인욱 교수 제공
중국 고대 한나라에서 유행한 청동 거울은 한국과 일본, 멀리 동유럽에서도 인기였다. 진품을 모방한 ‘모방 거울’ 제작도 활발했다. 강인욱 교수 제공
그러한 명품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청동거울이었다. 한나라의 청동거울은 중국 내에서도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화려한 장식이 그 뒷면에 있는데, 화장을 하는 데 필수 도구이며 태양을 상징하는 기능과 형태로 행복과 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거울은 한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사랑받았다. 특히나 일본 사람들이 좋아해서 일본의 야요이 시대 무덤에서는 거울 몇 개가 한 번에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데 중국의 명품을 서로 원해 수요가 많아지면서 부담이 심해지게 되었다. 그 대안으로 모방을 한 거울이 널리 사용되었다. 이 모방 거울(방제경)은 특히 삼한이 있었던 약 2000년 전경에 경상남도 일대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얼핏 보면 중국의 거울과 많이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무늬가 조잡해 차이가 난다.

거울의 무늬는 뒷면에 새기는 것이니 얼굴을 비추는 기능과 관계가 없다. 그러니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게 보급형으로 만들어서 널리 쓴 것이다. 모방 거울을 더 저렴하게 만들면서 거울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었다. 심지어 하남시 미사리에서는 백제 초기의 집자리에서도 발견되었다. 귀하게 쓰다가 소중히 무덤에 넣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쓰다가 그냥 버릴 정도로 흔해졌음을 의미한다. 이 모방 거울은 어설픈 가품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이 모방 거울은 머나먼 흑해 연안과 우크라이나에서도 발견되었다. 실크로드를 통해서 수입된 중국제 유물에 수요가 팽창하자 직접 만들어 보급한 것이다. 과도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의존도를 줄인 현명한 선택을 한 사람들은 우리뿐이 아니라 유라시아 건너편의 동유럽에도 있었다.

모방하며 생존, 진화한 인류


독일 홀렌슈타인-슈타델 동굴 유적에서 출토된 사자 머리를 한 인간상. 샤먼(주술사)은 다양한 동물로 빙의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홀렌슈타인-슈타델 동굴 유적에서 출토된 사자 머리를 한 인간상. 샤먼(주술사)은 다양한 동물로 빙의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가장 인기 있는 코미디 장르 중 하나가 성대모사이다. 인간이라면 진짜와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와 몸짓에 폭소를 멈추기 힘들 것이다. 왜 인간은 이렇게 어설픈 흉내를 보면서 즐거워할까. 아마도 인류의 진화에서 사람들은 인간은 물론 주변의 여러 사물을 흉내 내는 식으로 후손들을 교육시켜 왔던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주변을 흉내 내고 복제했다. 그 복제의 대상은 비단 인간뿐이 아니라 다양한 동물과 자연 현상들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그 특징을 표현하고 체화하면서 인간의 예술과 종교가 탄생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독일 홀렌슈타인-슈타델 동굴 유적에서 발견된 상아로 만든 조각상이 있다. 약 4만 년 전에 만든 세계에서 가장 앞선 이 인물상은 사자의 머리를 한 샤먼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구석기 시대 샤먼들의 예술상이 발견되었는데, 공통적으로 짐승의 형태를 모방한 것이었다. 샤먼은 다양한 동물의 형태로 빙의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모방은 단순히 웃음을 끄는 도구가 아니라 신을 부르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렇듯 모방은 인간의 특권이자 진화와 생존에서 필수적인 기술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진품’에 열광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진품’은 실제 심미적인 가치보다는 아름다움을 독점하려는 인간들의 욕망에 값이 매겨진 것이다. 원본과 가품의 차이가 전혀 없는 디지털 세계에서마저 ‘진품’이 등장할 정도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하지만 고고학이 증명하듯 인간은 서로서로 베끼면서 진화해 왔다. 적절하게 새로운 기술과 물건을 모방해서 우리의 삶에 도입하면서 우리는 생존해 왔다. 원본을 갈망하는 속마음은 결국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을 남과 차별화하려는 것이니 우리 인생에서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은 결국 우리의 욕망이 아닐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진품#모방#기원#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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