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셰우첸코’ 없길 바란다는 우크라이나인들[특파원칼럼/김윤종]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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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시 외치면서도 침략 반복 안타까움
전쟁을 사전에 막는 국가 리더십 갈망

김윤종 파리 특파원
김윤종 파리 특파원
“그의 저항시를 새기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러시아가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역사에서 그런 인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좋겠어요.”

기자는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후에는 외교부로부터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체르니우치, 비지니차 등 우크라이나 서남부 일대에서 지난달 말 취재했다. 가는 곳마다 국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타라스 셰우첸코(1814∼1861) 동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셰우첸코는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던 러시아 제국에 맞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저항시를 쓴 인물이다. 러시아 당국에 체포된 후 병이 생겨 47세에 요절했다. 이 때문에 그의 시는 외세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되새겨진다. 전국에 1000개가 넘는 동상이 건립됐다.

우리로 치면 윤동주 시인인 셈이다. 동상 앞에서는 러시아를 규탄하며 그의 시 ‘떨치고 일어나 그대들의 자유를 굳게 지키라. 자유의 새 나라에서 나를 기억해다오’(‘유언’)를 외치는 시민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셰우첸코의 시를 외치는 자신들의 모습이 ‘왜 되풀이되냐’고 호소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침공의 역사가 매번 반복되지만 이를 사전에 막아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분노, 후회, 연민 등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우크라이나는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직후 독립을 선포했지만 5년 후인 1922년 소비에트연방에 다시 편입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과 소련에 휘말려 700만 명이 사망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친러시아 혹은 친서방 정권이 수시로 교체되면서 불안정한 내부 정치가 이어졌고, 전쟁 발발의 주요 원인이 됐다.

이 때문일까. 남부 마리우폴에서 피란 온 소피아 씨는 기자에게 “죽은 사람들을 되살릴 수 없듯이, 이미 일어난 전쟁 참상은 되돌리기 힘들다”며 “러시아를 증오하면서도 ‘전쟁이 발생할 상황을 왜 우리가 막지 못했을까’란 생각도 자주 든다”고 했다. 민병대 AK 소총 훈련에 참가한 마리나 씨도 “자유를 위해 싸우려 하지만 후세대는 더 이상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말길 바란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추진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자주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9년 나토 가입 계획을 담은 개헌을 단행했다. 나토 가입 추진은 러시아가 “안보를 위협한다”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핵심 명분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는 10∼20년 내로 가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나토 내부의 판단이다. 최근 러시아와의 양국 간 회담에서도 우크라이나 측은 ‘나토 가입 포기 및 중립화’를 정전 협상 카드로 내건 상태다.

‘집단 학살’이 발견된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에 이어 9일에도 수도권 마카리우 지역에서 민간인 수백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평범한 국민들이다. 전쟁이 난 국가의 현장을 오가다 보니 많은 침략을 겪어온 우리의 역사가 자주 생각났다.

지금 이 순간도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고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국가의 외교, 나아가 미래를 멀리 보면서 스스로 정교하게 다져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
#우크라이나인#제2의 셰우첸코#침략 반복 안타까움#국가 리더십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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