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정책 자문을 구한다고 해서 회의에 갔더니 전문가라고 불러놓은 사람 중에 시장을 잘 안다고 할 만한 사람이 없더라고요.”(민간 연구원 출신 A 씨)
“회의에서 아무리 대안을 얘기해도 나중에 나오는 대책은 그대로였어요. 요식행위인 거 같아 나중엔 불러도 안 갔어요.”(대학교수 B 씨)
지난 몇 년간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과 관련해 왜 이렇게 시장과 동떨어진 정책이 나오는지 민간 부동산 전문가들에게 물어볼 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대체로 이랬다. 정부가 시장의 얘기를 들을 생각도,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그랬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취임사에서 “부동산정책은 투기를 조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집값 상승은 다주택자의 투기 때문이고, 다주택자를 막으면 집값은 안정될 거라는 논리가 정책 전반을 지배했다. 어떤 사람들이 왜 집을 사는지, 정책 적용 대상에 대한 분석은 없었다.
돌아보면 2017년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잠재됐던 주택 수요가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을 업고 폭발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1, 2인 가구가 ‘대세’가 돼 가던 때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서울 도심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고 계속해서 지적했지만 오히려 정책은 반대로 갔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상한제가 민간 공급을 억제했다. 고가주택을 중심으로 보유세와 거래세를 급격히 높이니 증여가 늘었다. 시장은 잇따른 규제지역 확대에 풍선효과로 답했다. 임대차 3법은 전월세 가격마저 폭등시켰다. 도심 공급 대책은 정부 출범 3년이 훌쩍 지나서야 나왔다.
결국 이번 대선은 ‘부동산 대선’이라는 별칭으로 치러졌다. 표 차가 컸던 서울에서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는 물론이고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마포, 용산, 성동구를 포함해 광진, 강동, 동작구 등 14개 구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앞섰다. 공교롭게도 동대문구를 제외하면 모두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이 고가주택 기준인 9억 원을 넘어선 곳(한국부동산원 기준)이다. 동대문구는 나머지 11개 구 중 중위가격이 가장 높았다. 중위가격이 9억 원을 넘으면서도 윤 당선인의 득표율이 낮았던 지역은 서대문구뿐이었다.
아직 정식 출범 전이지만 당장 이달 중으로 새 정부의 부동산정책 행보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이 22일경 공개될 예정이다. 정부가 예고한 대로라면 보유세 부담 완화 방안도 함께 나온다.
윤 당선인은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조절해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돌리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공시가격은 객관적인 시장가격으로 두고 과세표준이나 세율로 정책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을 받아들인 공약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년, 내후년은 어떻게 할지, 현실화 속도와 목표치가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도 시급하다.
정책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대안을 제시하고 실현하기는 어렵다. 부동산정책의 방향을 다시 가다듬는 일은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새 정부의 역량을 보여줄 첫 시험대가 이미 코앞에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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