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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중대재해법 오늘 시행, ‘공포와 채찍’만으로 사고 못 줄인다

입력 2022-01-27 00:00업데이트 2022-01-2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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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하루 앞둔 26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근무자들이 현장에 투입되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다. 성남=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산업현장이나 공중이용시설에서 사망 사고 발생 시 사업주나 책임자를 형사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늘부터 시행된다. 공사장이나 공장 등 산업계의 ‘중대산업재해’와 지하철 교량 대형식당 등 대중시설에서 생긴 ‘중대시민재해’가 모두 이 법의 적용 대상이다. 사고의 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된다. 기업 경영인뿐 아니라 중앙행정기관장, 지방자치단체장, 공공기관장, 일부 자영업자까지 아우르는 초유의 일벌백계 조치에 민관이 모두 긴장하고 있다.

평택 물류창고 화재와 광주 아파트 붕괴 등 안전불감증에 따른 인재(人災)를 막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준을 알기 힘든 모호한 법 규정으로는 불안감만 키울 뿐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 어렵다. 지금의 중대재해법은 사고 발생 시 처벌을 받는 안전보건 담당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국내가 아닌 해외현장 파견자도 법 적용 대상인지, 자영업자 중 누가 면책 대상인지 등 핵심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의문투성이다. 법이 애매하다면 시행령이나 부처 가이드라인이라도 구체적이라야 하지만 ‘잘 관리하고 적절하게 조치하라’는 식이다. 시범 케이스로 일단 처벌부터 하고 보겠다는 건가.

이런 모호한 규정 때문에 기업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건설사들은 ‘1호 처벌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27일부터 일찌감치 휴무에 들어가는가 하면 일부 기업은 질병으로 인한 재해를 우려해 신입사원 건강검진 때 재검만 나와도 채용을 기피하고 있다. 그나마 대기업과 공공 부문은 돈과 인력을 들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만 법조문 해석조차 힘든 중소기업들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비현실적인 규정을 보완해달라는 요구에 책임 있는 당국자 누구도 답하지 않는 것은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내모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산업안전은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문화의 문제다. 영국과 싱가포르에서 최근 사망사고 발생률이 줄어드는 것도 안전을 우선시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안전관리 소홀로 사고가 생기면 책임소재를 밝혀 엄단해야 한다. 그러나 그 처벌 기준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면 결국 아무도 지키지 않는 법이 될 것이다. 중대재해법이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도를 실질적으로 높이도록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보완책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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