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대본 삼아 역할극 해보세요[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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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말 잘하는데 글이 더딘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말은 또래보다 빨리 트이고 너무나 잘하는데, 글을 읽거나 쓰는 것은 영 진행이 안 되는 아이들이 있다. 사람마다 뇌 영역 발달 속도가 다르기는 하다. 어떤 부분이 유난히 잘 발달하기도 하고, 다른 부분은 유난히 덜 발달하기도 한다. 뇌에서 말을 하는 영역의 발달이 너무 빠르고 월등하면, 그 영역만 즐겨 쓰게 돼 다음으로 발달해야 하는 읽기와 쓰기가 더뎌지기도 한다.

제 또래보다 말을 잘하는 6세 아이가 있다고 하자. 이 아이는 말하는 것으로 항상 사람들에게 “어쩜, 넌 이렇게 말을 잘하니?” 칭찬을 받는다. 말을 잘하니까 말로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빠른 속도로 전달한다. 이 아이에게 말은 무엇보다 쉽고 편한 표현수단이다. 그래서 다음으로 발달시켜야 하는 읽기와 쓰기를 잘 하지 않는다. 해봤자 말하기만큼 인정도 못 받고, 말하기만큼 빠르지도 못하니 답답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발달한 것은 더 발달하게 되고, 덜 발달한 것은 더 늦어진다. 이렇게 되면 점점 더 말은 청산유수로 잘하는데 글을 쓰라고 하면 너무 싫어하는 아이가 돼 버린다.

뇌의 언어 발달 순서를 보면 듣기가 가장 먼저 발달하고 다음이 말하기, 읽기, 쓰기 순이다. 단계가 진행될수록 뇌의 여러 기능이 더 세부적으로 발달한다. 이 때문에 두뇌 발달을 위해서도 고르게 발달할 수 있도록 부모가 잘 지도해야 한다. 읽기와 쓰기를 싫어하는 것은 취학하면 모두 문제가 된다. 교과서, 문제집 등도 모두 읽기로 해야 하고, 필기나 문제 푸는 것 등은 모두 쓰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말을 잘하는 아이들은 이해가 빨라 마음이 급하다. 자신이 더디 읽는 속도를 못 기다린다. 그래서 스스로 그림책을 읽는 것을 답답해한다. 이런 아이에게는 부모가 한 번 읽어주든 그림책 내용을 미리 알려주든 하는 것이 좋다. 그러고 나서 같이 읽으면 조금 재미있어 한다. 이런 아이들도 어쨌든 끊임없이 읽혀야 된다. 부모가 한 줄 읽어주고 따라 읽게 한다거나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그림책을 선택하여, 아이와 부모가 등장인물을 각각 정해서 읽어보는 등 어떤 식으로든 자꾸 읽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글자를 잘 모르는 아이라면 부모가 몇 번 읽어주고, 아이가 외워서 알고 있는 대사를 하도록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짧은 대사로 한다. 그렇게 외운 것을 글자에 맞춰 읽게 되면 그 글자를 정말로 알게 된다.

이 아이들은 혼자 읽으라고 하면 글대로 안 읽고 “개구리가 왔어요?”를 “왔어? 개구리?”라고 바꿔 읽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잘했는데, 여기에는 ‘개구리가 왔어요?’라고 되어 있네”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아이가 “아∼ 개구리가 왔어요”라고 수정해서 읽는다. 이렇게 천천히 제대로 읽게 한다. 읽기를 지도할 때 조심해야 하는 말이 있다. “끝까지 좀 읽자”와 “이거 다 읽고 나서 하자”다. 가뜩이나 지루해도 참고 있는데, 이 말을 들으면 금세 ‘우와, 지겨워’가 된다. 책이 지겹고 지루하다는 것이 학습돼 다음부터는 안 하려고 들 수 있다.

쓰기는 많이 안 하다 보면 손놀림이 어눌해지고 쓰는 것을 귀찮아하게 된다. 한 글자 쓰고도 힘들어서 “아∼” 하고 한숨을 쉰다. 이런 상황에 “매일 한 쪽씩 써”라고 하면 그 상황이 괴로울 뿐이다. 또 “너 안 하면 혼난다. 너 학교 들어가서도 이러면, 선생님한테 혼나”라고 겁을 주면 학교 가는 것에 공포까지 생긴다.

쓰는 것이 편해지려면, 먼저 손을 많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가 옛날에 했던 실뜨기나 공기놀이, 고무찰흙놀이 등을 많이 시킨다. 끼워서 만들기 등 조작놀이도 좋다. 손 사용을 많이 늘려준 다음,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선 긋기부터 시킨다. 직선, 사선, 동그라미 이런 것을 자꾸 연습해야 한다. 아이가 뭔가 써낼 때는 직선 하나라도 “아우, 잘한다. 똑바로 잘 썼네”라고 격려해준다. 처음부터 글자 쓰기를 목표로 하지 말자. 연필을 잡고 노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연필을 잘 잡으면 선을 긋게 하고 선을 잘 그으면 글자를 따라 써보게 한다.

글쓰기는 어떻게 시켜야 할까? 글쓰기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생각을 내적 언어로 정리하고, 그것이 정리가 되어서 밖으로 나올 때는 사족을 빼고 핵심 이야기만 추려야 하고, 동시에 손을 움직여줘야 한다. 이 때문에 성격이 급하거나 산만한 아이들은 글쓰기를 좀 힘들어한다. 말은 잘하는데 글쓰기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내가 제시하는 방법은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녹음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녹음을 듣고 받아쓰게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생각을 정리해서 쓰는 연습을 시킨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말 잘하는데 글이 더딘 아이#그림책 대본#역할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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