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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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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가 던진 영화감독의 존재와 역할
동료 믿고 장애물을 돌파하는 전사
마지막까지 생각하고 고민해 해법 찾는 사람
일가 이룬 이들은 일의 본질과 가치를 계속 질문
시간과 노력은 평범한 직장인이 성과 내는 방법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여러 날 언론을 뒤덮었던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이 이젠 잠잠해졌지만 나는 그 얘기로 시작하려 한다. 그녀의 수상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이날은 여우조연상 외에 작품상과 각색상 등 23개 부문의 수상작이 발표됐는데 봉준호 감독의 감독상 발표도 매우 흥미로웠다. 지난해 감독상 수상자인 봉준호 감독은 올해 시상자로 나섰고 수상작을 발표하기 전 감독의 일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자신은 지금도 감독이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잘 모르겠다며 감독상 후보에 오른 5명의 ‘동료’들에게 숙제를 냈다.

도대체 연출이란 무엇이며 감독이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답해 달라고 했다. 후보 감독들은 모범생처럼 답안지를 제출했고 그 가운데 특히 두 감독의 답변이 귀에 들어왔다. ‘어나더 라운드’로 국제영화상을 받은 토마스 빈테르베르 감독은 “저 아래 시커먼 물이 출렁이는 절벽 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동료 아티스트와 함께 뛰어내리면 뜨거운 연대감이 치솟는다”고 했다. 영화는 대표적인 팀워크의 산물이다. 감독, 배우뿐 아니라 촬영과 조명, 미술 등 수많은 스태프의 수고가 모여 영화 한 편이 완성된다. 그런 중에도 감독은 모든 책임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사람으로 자주 외롭고 막막할 것이다. 그럴 때 함께하는 사람들을 믿고 다시 용기와 에너지를 얻는다는 뜻임을 나는 단박에 이해했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광고회사에서 일할 때 새로운 일을 앞두고 있으면 막막했고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경력이 십 년이 되고 이십 년이 되어도 두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그런 때면 가만히 생각하곤 했다. 회의실에서 동료, 후배들과 머리를 맞대면 괜찮은 걸 만들 수 있을 거야라고. 이 생각은 실제로 이어져서 우리는 꽤 근사한 캠페인을 해내곤 했다.

감독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인상적인 답변을 낸 또 한 사람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다. 그는 짧지만 강렬한 답을 했다. “어떤 장면을 찍는 방법은 수백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두 가지 방법뿐이다. 맞는 방법과 틀린 방법!” 엄정한 과학 분야도 아닌데 맞는 방법과 틀린 방법 두 가지만 남는다니 이게 무슨 뜻일까? 창의성으로 무장한 인재들이 모인 영화판이라 아이디어도 만발일 텐데 핀처 감독은 오히려 단 하나의 정답을 말한다. 평범한 우리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말이다. 핀처 감독의 답을 듣는데 온갖 책임을 어깨에 얹고 장애물을 돌파해 나가는 전사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앞에서 나는 함께 일하는 것의 기쁨을 말했지만 어쩌면 핀처 감독은 함께 일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좋은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사람마다의 다양한 생각은 물론 존중되어야 하지만 종국에 다다르면 책임 없는 사람들의 아이디어는 사라진다. 생각에 생각을 뒤집으며 불안함 가운데에서도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에 도달할 때까지 뜨겁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가 결국은 중심에 서며 그렇게 찾아낸 아이디어가 과제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해법’이 된다. 핀처 감독은 이런 얘기를 한 게 아닐까?

요즘은 한 회사를 오래 다니거나 같은 분야의 업무를 계속하는 것의 가치를 그다지 높게 치지 않지만 어떤 일을 오래도록 한 분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의 얘기엔 보석 같은 인사이트가 있다. 그들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시때때로 돌아본다. 내가 하는 일의 본질과 가치를 계속 묻는 것인데 이 질문을 하는 사람은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혁신하기 때문이다. 좋은 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직급이 높거나 자본을 대는 사람이 힘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결과는 그런 이들 가까이에 있지 않다. 자신이 마지노선이라 생각하고 그 일에 시간과 노력을 전부 집어넣는 사람이 결국은 일의 중심이요, 방법이 되는 거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희망을 가져도 되는 이유 아닐까? 세상의 모든 일은 이렇게 돌아가고 성과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감독#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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