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희균]155센티미터, 병

김희균 문화부장 입력 2021-03-17 03:00수정 2021-03-17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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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과 레이디 가가의 공통점
주변에 위로와 용기 불어넣는 셀럽의 힘
김희균 문화부장
15일 새벽, 바다 건너의 일전(一戰)은 적어도 나에겐 세기의 승부였다. 마치 1998년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H.O.T.와 젝스키스가 맞붙던 날처럼,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겨루던 날처럼,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가 승부를 벼리던 날처럼 말이다.

꼭두새벽부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아… 나의 차애캐가 최애캐를 이겼구나’라고 짧은 한숨을 쉬었다. 63회 그래미 어워즈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상은 방탄소년단이 아닌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에게 돌아갔다. 하긴, 최정상 디바 둘이 만나 비처럼 내리는 칼을 맞으며 ‘Rain on Me’를 열창했으니(뮤직비디오 콘셉트),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매일 출근길엔 가가를, 퇴근길엔 방탄소년단을 듣는 나로서는 하필 둘이 맞붙는 구도가 반갑지 않았다. 한국 대중가수 최초의 그래미 수상이 불발된 것이 너무나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가의 수상곡이 고난을 이겨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건 위안이 된다. 계속 비를 맞으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난 드라이한 게 좋지만, 그래도 살아는 있다(I‘d rather be dry, but at least I’m alive)”라고 말하는 꿋꿋함. 그래서인지 이 노래 감상평에는 ‘코로나로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견딜 수는 있다’는 반응이 많다.

이런 위로와 용기는 레이디 가가라는 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힘이기도 하다. 그를 잘 모르는 이들은 생고기 드레스를 입는 기인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드라마틱한 고난들을 견뎌낸 과정들을 보면 달리 보게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에 천재성을 보여 예술대에 조기 입학하지만 왕따로 자퇴한다. 스트립 댄서 등으로 전전하다 마약에도 손을 대지만 결국 음악적 재능으로 일어선다. 화려하게만 보이던 그는 2017년 다큐멘터리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을 통해 민낯과 심신의 병마를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실연의 상처, 심각한 만성 통증으로 신음하면서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을 최고로 만들어내는 일상이 담겨 있다. 당시 가가는 트위터에 “나는 섬유근육통과 싸우고 있다. 이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같은 환자들을 돕고 싶다”고 썼다. 다음 해에는 19세 때 성폭행당했던 걸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피하고 살았다”고 털어놓으며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155cm의 작은 키로 팝의 거인이 된 것은 이처럼 자신의 약점과 아픔을 드러내고, 나아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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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방탄소년단도 마찬가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평균 19세의 연습생들은 대형 기획사의 뒷받침 없이, 말 그대로 ‘피 땀 눈물’(2016년 곡)을 쏟아 데뷔 8년 만에 그래미 단독 무대에 섰다. 이들에게 강력한 팬덤이 따르는 이유 중 하나는 각자의 고민과 상처를 드러내고, 공유하며, 위로하기 때문이다. 팬데믹 속에 발표한 ‘병’(2020년 곡) 가사는 코로나로 학교도 일자리도 잃은 청춘들에게 그대로 꽂힌다. ‘몸 부서져라 뭘 해야 할 거 같은데 마냥 삼시 세끼 다 먹는 나란 새끼… 절뚝거려 인생 걸음… 차분하게 모두 치료해 보자고 나의 병, 겁.’

나도 실은 힘들지만 견뎌내고 있다고, 아프지만 괜찮다고, 너희들도 그럴 거라고 진정성 있게 말하는 것. 자신의 성공만을 향해 달리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생각하는 것. 만약 ‘셀럽’도 직업이라 한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직업윤리의 표상 아닐까.

김희균 문화부장 foryou@donga.com



#방탄소년단#레이디 가가#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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