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척간두에 선’ 청년변호사들[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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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3만 명 시대의 첫 로스쿨 출신 단체장
적자생존 시대에 맞는 해법 제시해 우려 씻길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몇 년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의 분쟁조정위원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의뢰인이 수임료 일부를 반환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약 50만 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한참 동안 망설이던 청년변호사의 표정이 아직 잊히질 않는다. 수임 기간이나 변론 내용만 보면 결코 과한 수임료라고 보긴 어려웠다. 결국 청년변호사가 조정을 거부해 소송 절차로 넘어갔다. 요즘 서초동에는 100만 원 이하 수임료 반환 소송이 종종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400∼1700명씩 쏟아져 나왔다. 1906년 변호사 제도가 도입된 이후 100년 만인 2006년 등록 변호사가 1만 명을 넘어섰고, 그 이후 8년 만인 2014년 2만 명, 다시 5년 만에 3만 명에 도달했다. 올 1월 현재 휴업 중인 변호사를 제외한 활동 중인 변호사는 2만4000여 명이다. 이 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법연수원 출신이 1만3500여 명,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시험 출신이 1만600여 명이다. 아직 로스쿨 출신이 절반에 못 미치는데, 내년쯤에는 로스쿨 출신이 과반이 될 것이다.

변호사 업계가 적자생존의 시대로 바뀌면서 전체 변호사의 40%가량인 약 1만 명의 20, 30대 청년변호사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청년변호사들만의 은어(隱語)도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막변’이다. 로스쿨을 졸업한 막내 변호사인데, 낮은 월급에 기피 사건인 ‘교폭절’(교통사고, 폭력, 절도) 사건을 주로 맡는다고 한다. ‘블랙 로펌’이라는 말도 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블랙 기업처럼 청년변호사들에게 매달 100만 원의 월급으로 6개월간의 고강도 실무 수습을 요구하는 로펌이다. 필수 코스인 실무 수습을 할 곳이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버틴다고 한다.

로스쿨을 졸업한다고 안정된 삶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매년 1500명 안팎의 로스쿨 출신 변호사 중에서 ‘검클빅’(신임 검사, 법원의 로클러크, 대형로펌 변호사)이 될 수 있는 인원은 각 100명씩 300명 정도다. 중소 로펌의 경우 월급이 200여만 원, 1년 연봉이 3000만 원에 불과하다. 개인 변호사로 개업하면 수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지난해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는 매달 1인당 평균 1건 이하의 사건을 수임했다. 1건의 평균 수임료가 500만 원 이하였는데, 청년변호사의 수임료는 평균보다 낮다.

변호사시험 2기 출신으로 청년변호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김정욱 변호사가 전국 최대 지방변호사단체인 서울변회 회장에 최근 당선됐다. 변호사 업계의 주류가 로스쿨 출신으로 세대교체가 됐다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꼽힌다. 김 변호사는 당선 직후 “지금 변호사 업계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고 했다. 청년변호사 일자리 확보, 세무사와 법무사로부터 변호사 직역 수호, 변호사 업계의 ‘타다’로 불리는 법률 플랫폼과의 분쟁 등 현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체계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을 받은 사법연수원생과 달리 로스쿨 출신의 개성을 살려 새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반면 현안 대부분이 변호사 단체의 권한이 아닌 정부와 국회, 유사 직역 등과 머리를 맞대고 조정해야 하는 난제라는 점에서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공익적 이유로 설립된 변호사단체가 생존 문제에만 집중하면 자칫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수 있다. 국민의 동의 없이는 생존의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새 집행부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백척간두#청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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