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여당이, 수사는 정부가 자초했다[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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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 총리와 秋 장관 등 여권, 원전 감사 표결 찬성
산업부 ‘청와대 보고 문건’ 한밤 삭제는 중대범죄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국회가 감사를 요구한 사항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난센스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의 조기 폐쇄와 관련한 감사를 “난센스”라고 폄훼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발언을 최근 국회에서 강하게 비판했다. 감사원은 원전 감사를 왜 시작했을까.

지난해 9월 30일 국회 본회의장.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국회의 감사원 감사요구안에 대한 표결이 있었다. 1년 전 국정감사에서 해당 의혹을 처음 제기한 장석춘 당시 야당 의원의 제안 설명 직후 여당 의원의 반대토론 없이 곧바로 전자투표가 실시됐다. 203명의 투표 의원 중 162명이 찬성해 감사요구안이 통과됐다. 반대(16명)와 기권(25명)이 있었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동의가 없었다면 감사 착수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 감사요구안에 찬성한 20대 국회의원은 문희상 정세균 추미애 이인영 최재성 박범계 전해철 등 여당 핵심 의원들이었다.

감사요구안은 국회의 감사 요구에 감사원이 3개월 안에 감사를 한 뒤 그 결과를 국회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다. 2002년 11월 국회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제안해 2003년 1월부터 국회법 등에 관련 조항이 신설됐다. 당시 감사원은 “감사원의 독립성이 훼손될 소지가 다분하다”며 반대했지만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감사원이 국회 지시나 지휘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 뒤 국회에서 사실상 만장일치로 해당 법안이 통과됐고, 감사원은 국회가 요구한 사행성 게임, 저축은행 비리, 4대강 사업 등의 감사를 진행해 왔다.

여당이 아무런 저항 없이 감사에 찬성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의 생각은 여당과 달랐던 것 같다. 감사원이 국회의 통보를 받고 감사에 착수하자 산업부 담당 공무원들은 대책회의를 열었다. 담당자의 이메일, 휴대전화에 저장된 원전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지우도록 했다. 감사원이 자료 제출을 요구하기 전날인 일요일 오후 11시 24분부터 다음 날 오전 1시 16분까지 약 2시간 동안 122개 폴더의 문건 444건을 삭제했다. 자신이 원전 업무를 담당할 때 사용하던 컴퓨터를 다른 직원이 사용하자 그 직원으로부터 비밀번호를 미리 받아 삭제한 것으로 단독 범행으로 보기도 어렵다. 청와대 보고 문건 등 민감한 자료부터 복구를 못 하게 삭제해 문건 120건이 복구 불능 상태다.

감사 방해 혐의는 1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할 수 있는 중대 범죄지만 감사위원회의 반대로 고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내부 지침은 범죄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면 수사참고자료를 검찰총장에게 송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침상 수사참고자료에는 인적 사항, 죄명, 적용 법조, 범죄 혐의로 의심되는 행위, 자백 여부, 주요 증거, 증거 인멸 여부를 기재하고, 관련 증거자료를 첨부하게 되어 있다.

검찰은 이 자료를 근거로 거의 100%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수사에 나섰는데, 여당은 “윤석열 검찰의 정치 개입”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감사원이 원전 감사에 나설 수 있도록 찬성표를 던진 곳은 여당이었고, 산업부 직원들의 증거 인멸이 없었다면 검찰 수사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검찰 수사가 멈춘다면 의혹이 사라질까. 진실은 언젠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그걸 감추려고 한 쪽이 몇 배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화 이후 정부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반복적으로 학습해 온 교훈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감사#여당#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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