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 넘은 정치오염과 무소신이 빚은 ‘예스맨’ 홍남기 사표소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5일 00시 00분


코멘트
그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사의 표명 사실을 밝힌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는 “인사권자의 뜻에 맞춰 직무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의를 번복했다. 대통령이 사직서를 반려했다는 점을 번복 이유로 들었다.

홍 부총리는 자신의 사의 표명을 ‘정치쇼’라고 야당에서 비판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 상임위원회 공개석상에서 폭탄 발언하듯 사의 표명을 작심 공개하고 또 하루 만에 180도 말을 뒤집은 일련의 과정을 보면 ‘쇼’라는 지적이 오히려 타당해 보인다. 장관의 사의 표명은 그 자체가 중대한 국정행위이고, 더욱이 사직서 제출 사실을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다면 이는 반드시 책임을 지겠다는 대국민 약속이나 마찬가지다. 거취 문제를 손바닥 뒤집듯 없던 일로 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무책임한 행태다. 논란되는 정책에 반대했다는 기록을 남기려는 ‘면피성’ 처신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소동은 경제사령탑으로서의 홍 부총리 리더십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홍 부총리는 2018년 12월 취임한 이래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확대 지급 등 주요 정책을 추진하면서 청와대와 여당에 끌려다닌 경우가 허다했다. 증권거래세 인하와 재정준칙 제정 여부,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등 여권과 이견이 발생한 7차례의 주요 정책에서 처음에는 소신을 세우는 듯하다 결국에는 굽히고 말았다. 오죽 이런 일이 잦았으면 관가에서 ‘용두사미(龍頭蛇尾)’에 빗대 ‘홍두사미(洪頭蛇尾)’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홍 부총리가 경제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에는 오로지 지지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경제정책의 원칙과 재정건전성을 해친 청와대와 여당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하지만 국가 경제를 위해 직(職)을 걸고 끝까지 소신을 관철하기는커녕 경제정책이 정치에 오염되는 것을 거들다시피 해온 홍 부총리의 ‘예스맨’ 처신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이미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잃은 홍 부총리로는 미증유의 코로나 경제 난국을 헤쳐가기 어렵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홍남기 사의 표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