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바꿔라”는 기업가정신이 주는 울림[동아 시론/이만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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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이 남긴 최대 유산은 기업가정신
반도체, 휴대전화 정상 오른 뒤에도 위기의식 일깨우는 ‘휘슬블로어’ 역할
삼성이 각종 난관 뚫고 다시 도약하길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오늘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발인식이 엄수되는 날이다. 33년 동안 삼성그룹을 이끌며 반도체 TV 휴대전화 등 초우량 제품으로 우리 국민의 기를 살려준 영웅이 흙으로 돌아간다. 언제나 한발 앞서 위기를 일깨우며 변화를 외치던 혁신의 리더십이 우리 곁을 떠난다. 코로나19 위기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란의 정점이라 더욱 아쉽고 안타깝다.

외국을 다녀보면 삼성은 우리의 위상이고 자존심이다. 삼성 로고가 찬연한 입간판이 공항과 시내 중심에 걸려 있고 삼성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현지인이 사방에서 눈에 띈다. 일본의 소니와 도시바는 삼성에 눌려 엉망으로 쪼그라들었다. 이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가 작고한 1987년 12월 취임하면서 ‘1등 아니면 꼴등’이라며 초일류 삼성의 기치를 높이 세웠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는 1993년 6월 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경영 선언은 삼성의 상징이다. 유럽 각국과 일본을 오가며 간담회를 수없이 개최했고 800시간 넘는 사장단과의 토론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좌표인 ‘지행 33훈’을 정리했다. 1995년 3월 구미공장에서 500억 원어치 휴대전화 15만 대를 일거에 불사르는 결단으로 2등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전자제품을 직접 뜯어보고 다시 조립하면서 개선할 포인트를 살폈고 여러 대의 TV를 동시에 켜놓고 시청하면서 영상을 점검했다. ‘미래 산업의 쌀’임을 강조하며 반도체에 운명을 걸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인재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데려다 미래를 망치게 두면 사회적 죄악이라는 말로 인재육성 책임을 강조했다. 연구개발 인력을 최고로 대우했고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와 시장을 숙지하도록 지역 전문가와 글로벌 인재의 해외 현장방문을 확대했다. 훌륭한 인적·물적 자원을 더욱 훌륭하게 가다듬는 연금술이 탁월했다. 공석이나 사석에서 “삼성에 적어도 30년 이상 다니면 평생 먹고살게는 해줘야 할 것”을 강조했다는 일화는 삼성맨 모두가 너무 좋아하는 덕담이다.

반도체와 휴대전화가 최상의 궤도에 오른 2008년에는 사장단회의를 개최하고 5대 신수종사업을 새로 선정했다. 2020년까지 매출액 50조 원을 목표로 태양 및 자동차용 전지, 바이오 LED 의료기기 등에 집중 투자를 선언했다. 호황에 자만하는 징조가 나타날 때마다 어김없이 위기를 일깨우는 ‘휘슬블로어’의 타이밍이었다. 바이오와 자동차용 전지는 새로운 먹거리로 빛을 발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SDI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0위권으로 고속 진입하는 성과를 시현했다.

이병철 창업주가 개업한 삼성상회가 모태인 삼성은 자녀 세대에서는 CJ 신세계 한솔 새한으로 분화됐는데, 새한그룹은 일찍 해체됐다. 이 회장이 승계한 삼성은 40배 넘는 고도성장을 달성했고, CJ와 신세계의 성과도 매우 높다. 장조카인 이재현 CJ 회장이 연일 문상하면서 ‘자랑스러운 작은아버지’라며 추모하는 모습에서 삼성가 협력의 강화를 엿볼 수 있다.

6개월 기한의 상속세 신고와 재산분배에도 이목이 쏠린다. 연부연납이 승인되더라도 6년 사이에 10조 원의 상속세를 분할 납부해야 한다. 상속세 마련을 위해 계열사 배당을 늘리면 투자 재원이 부족해질 수 있는 만큼 계열사 간 사업 재조정과 금융계열사 매각 및 통폐합을 통한 구조조정이 폭넓게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재개된 국정농단 및 삼성물산 합병 관련 형사재판도 풀어야 할 숙제다. 공소사실 대부분이 내부통제시스템 운용 및 이사회의 경영감시와 관련된 사항이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문제가 생기면 이사회 의장이나 감사위원장이 직접 해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2심 재판부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권고했는데 특별검사는 전문심리위원의 평가를 전제로 수용 의사를 밝혔다. 계열사의 복잡한 회계문제까지 그룹 총수가 일일이 보고받을 수는 없다. 최고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지닌 사외이사가 선임되도록 최고경영자가 ‘휘슬블로어’로 나서야 한다.

IOC 위원으로서 평창 겨울올림픽을 유치한 이 회장의 공로는 매우 크다. 대한레슬링협회장을 맡으면서 금메달 밭을 일궈냈다. 이 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아 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스포츠 지원을 정상화하고 장학 사회복지 및 문화 사업을 더욱 발전시킬 숙제도 삼성의 몫으로 남았다. 삼성이 각종 난관을 뚫고 다시 도약하길 바란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이건희#삼성#기업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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