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예술에도 병역특례 허용을”… “기준 모호해 확대요구 커질것”[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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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계기로 본 병역특례제도 논란

신규진 정치부 기자
신규진 정치부 기자
“가수 ‘비’가 수익 일부를 정부에 내고 군 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요?”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2012년 6월 연세대에서 강연 도중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강연장은 병역특례 논쟁으로 들끓었다. “돈으로 정의를 사는 행위” “형평성에 어긋난다” 등 예비역 병장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일부 학생들은 조심스레 “국위 선양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이런 발언들엔 대개 야유가 쏟아졌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특례 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가수 비가 ‘월드스타’로 불리던 시절과 비교하면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국제적 인식은 확연히 달라졌다. K팝은 세계적 주류 문화로 우뚝 섰고, 그중에서도 방탄소년단(BTS)은 ‘국대(국가대표) 아이돌’ 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BTS가 2018년과 올해 미 빌보드 앨범,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특례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전보다 힘을 얻고 있는 모양새다.

논란의 불씨는 정치권이 댕겼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인 노웅래 의원은 5일 “BTS는 빌보드 1위로 1조7000억 원의 경제 파급 효과를 냈고 한류 전파와 국위 선양의 가치는 추정조차 할 수 없다. 3자 입장에서 어떤 게 국익에 더 도움이 되느냐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노 의원은 2018년 아시아경기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은 손흥민(토트넘)과 BTS를 비교하며 “군 복무를 하면서도 국위 선양을 계속하도록 마련된 게 병역특례제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말을 아끼라”며 당내 함구령까지 내렸지만 논란은 7일부터 시작된 국정감사에서 더욱 확대됐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서 BTS의 병역특례 및 연기 주장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순수예술과 체육 외에도 대중문화예술인도 특례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다. 병역에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련 부처 수장이 기존 특례 불가 방침에서 한발 물러선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병역 문제는 자칫 사회적 분열과 공분을 초래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형평성과 공정성 논란으로 인한 파장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좀 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BTS를 필두로 한 대중문화예술인의 병역특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어디까지 진행됐고 어떻게 나아갈까.

○ 병무청 “지난해 결정, 지금도 변함없어”


현행 병역법상 병역특례로 볼 수 있는 대체복무 대상은 크게 체육·예술 분야로 나뉜다.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아경기 1위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체육요원에 편입되고, 예술요원은 병무청장이 정한 국제예술경연대회에서 2위 이상, 국내 예술경연대회에서 1위를 해야 가능하다. 이들은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이수한 뒤 복무 기간 동안 자신의 분야에서 활동하며 544시간의 봉사활동을 채우면 된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300명 안팎이 예술요원으로 편입돼 대체복무를 했다. 이 예술요원 대상에 대중문화예술인을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제기돼 오고 있는 것.

정부는 지난해 11월 대중문화예술인을 대체복무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병무청 주관으로 국방부, 문체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한 1년여간의 태스크포스(TF) 논의에서 BTS 등 아이돌의 대체복무 포함 여부는 막판까지 치열하게 다뤄졌다. 정부 관계자는 “비록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지만 관계기관 공식 논의에서 주요 안건으로 논의된 것만 봐도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걸 보여준다”고 전했다.

정부가 결국 형평성 논란을 의식해 대중가수의 병역특례 확대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대중가요가 특례 분야로 인정될 경우 영화, 연극 등 대중문화 다른 분야뿐 아니라 e스포츠 등 각계로 특례 확대 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중가수의 영리 활동을 ‘국위 선양’으로 볼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지적도 여전히 많다. 대중가수가 개인 기량보다 기획사 역량에 따라 인기가 크게 좌우된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게다가 대체복무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콩쿠르 등 순수예술 문화에 비해 대중문화 성과를 공인할 만한 지표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빌보드 차트나 그래미상 등 다른 나라의 성과 지표를 특례 판단의 기준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병역특례 논의가 영화계로 확대된다면 칸이나 아카데미 가운데 어떤 영화제를 특례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감독상 또는 주연상 등 어떤 부문을 수상해야 특례 대상으로 인정할지 등을 두고 논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공산이 크다.

병무청은 최근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예술요원 편입은 대체복무 감축 기조,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제고하려는 정부 입장과 맞지 않아 검토에서 제외했다. 그 결정은 지금도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군 안팎에선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복무 특혜 의혹 등 공정 관련 사안이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 임기 내 특정 분야에 예외를 줄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게다가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국방개혁 2.0의 큰 틀에서 병역특례의 단계적 축소와 폐지 기조가 이어져왔다. 한 군 관계자는 “2013년 연예병사들의 일탈로 관련 제도 자체가 폐지된 뒤로도 연예인의 휴가일수 특혜나 병역 기피에 대한 여론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대중문화예술 분야로 병역특례를 확대하는 결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찬반 모두 형평성 내세워…“특례 폐지” 주장도


여러 논란과 별개로 당사자들은 병역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BTS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멤버 진(28)은 올해 2월 기자회견에서 병역 문제에 대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나라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지 응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2017년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내년까지 입대를 연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멤버 대부분이 2년 내 입대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례 문제는 언제라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대중문화계에선 다른 분야와의 형평성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예술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에 순수예술 분야만 특례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대중가수가 빠지면 기존 특례 분야에 속했던 성악가도 빠져야 한다. 국위 선양 기준으로 볼 때 BTS 같은 아이돌이 훨씬 기여도가 높다”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나 “밥 딜런은 노벨 문학상도 받는데 왜 우리는 (대중가수를) 딴따라로만 보느냐. 대중음악을 너무 폄하하는 것 아니냐”는 노웅래 의원의 발언에도 어느 정도 타당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대중가수 특례 찬반 측 모두 형평성 문제를 내세우다 보니 이참에 기존 분야의 대체복무까지 폐지해 버리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애국주의를 앞세운 국위 선양도 결국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물 아니냐는 인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 이진우 씨(28)는 “특례를 허용하든 안 하든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모두 없애버려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단발성 법안 발의 아닌 지속가능 논의 이뤄져야


2년 넘게 지속된 BTS 병역특례 논란은 대체복무 포함 문제에서 병역연기 검토로 절충점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7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감에서 “병역특례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연기를 검토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병무청도 윤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소집 연기 여부는 관계부처와 검토해 나가겠다”고 했다. 앞서 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지난달 문체부 장관이 국가 위상과 품격을 높였다고 인정한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에 한해 만 30세까지 징집 연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지난달 발의했다.

하지만 때만 되면 병역특례 문제를 꺼내드는 정치권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BTS의 팬클럽 ‘아미’ 역시 최근 여권의 병역특례 요구 움직임에 대해 “BTS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7대 국회부터 20대까지 병역특례와 관련해 발의된 법안은 총 12건. 이 중 11건이 대형 스포츠 이벤트 전후 높아진 여론의 관심에 기대 발의됐다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특례 확대가 5건으로 가장 많았고 특례 폐지(3건)와 축소(2건)가 뒤를 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이슈가 생길 때마다 단발성 법안 발의가 이뤄져 병역특례 관련 논의가 성숙되는 과정이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징병제를 택한 13개 국가 중 체육, 예술 분야에만 병역특례를 주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공인된 기준도 없을뿐더러 대중문화예술인 병역특례에 관해 참고할 선례마저 없다는 의미다. K팝의 선전으로 언제라도 제2, 제3의 BTS가 등장할 수 있는 만큼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공론화 과정이 지금이라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역 연기에 대한 검토와 함께 병역법 개정이 필요하다면 여야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해보는 것도 고민해볼 만하다. 물론 이 모든 논의의 기준은 국민정서에 반하지 않고 병역제도 근간을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여야 할 것이다.

신규진 정치부 기자 newjin@donga.com
#방탄소년단#병역특례#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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