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노여움을 산 시[이준식의 한시 한 수]〈50〉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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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궁궐로 상서는 이제 그만 올리고 남산의 낡은 오두막으로 돌아가련다./재주 없어 명군께서 날 버리셨고 병 잦으니 친구조차 소원해졌다./백발은 노년을 재촉하고 봄빛은 세모를 몰아낸다./오랜 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데 솔 아래 달빛만이 창가에 허허롭다.》
(北闕休上書, 南山歸弊廬. 不才明主棄, 多病故人疏. 白髮催年老, 靑陽逼歲除. 永懷愁不寐, 松月夜쳓虛.)
―‘세모에 남산으로 돌아가다(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맹호연(孟浩然·689∼740)
 
옛 선비들은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아예 벼슬을 포기했을 때 곧잘 ‘남산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시인은 왜 벼슬을 포기했을까. 군주는 현명한데 자신의 재주가 부족한 데다 병이 잦아 친구들과의 교유마저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누굴 원망하랴. 게다가 흰머리가 돋을 만큼 이젠 나이도 들었고, 마침 봄기운이 돌면서 또 한 해가 허망하게 지나려 한다. 언뜻 이 시는 벼슬길이 막힌 여느 선비의 상투적인 넋두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맹호연은 당시 장안 사대부 사이에 꽤 시명(詩名)을 날리던 중년의 인재. 화근은 그가 이 시를 황제와의 첫 대면에서 읊은 데서 비롯되었다. 맹호연을 처음 만난 현종이 반색을 하며 시 한 수를 요구하자 시인이 즉석에서 지어 올린 것이다. 황제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대가 벼슬을 구한 적도 없거니와 내가 언제 그대를 버린 적이 있던가?” 겉으로는 겸손하게 재주가 없다고 말하지만 내심 원망과 탄식을 토로했으니 황제로서는 시인의 괜한 푸념이 고깝게 들렸다. 황제는 시인의 낙향을 명령했고 이후 맹호연은 평생토록 벼슬과 멀어졌다.

이백이 “그 높은 인품을 어찌 우러러나 보랴? 난 그저 여기서 맑은 향기나 본받으리니”라 극찬했던 맹호연. “봄잠에 빠져 날 새는 줄 몰랐는데 곳곳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 간밤에 몰아친 비바람 소리, 꽃잎은 얼마나 떨어졌을까”라는 ‘봄날 새벽’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세모귀남산#맹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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