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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뭉크의 ‘절규’, 세대와 국경 넘어 널리 사랑받는 이유는…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19-09-25 15:31업데이트 2019-09-2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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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3 (Edvard Munch, The Scream, 1893) *에케베르그 Ekeberg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해골 같은 사람이 두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 여기까지만 설명해도 ‘아하’하고 단박에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바로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다. 이 그림은 광고, 영화, TV, 현대미술 등에서 수없이 패러디되거나 복제되어 ‘절규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노르웨이 화가의 그림이 세대와 국경을 넘어 널리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죽음, 질병, 불안, 공포. 어린 시절부터 뭉크는 네 단어와 무척 친숙했다. 5세 때 어머니가 죽은 후 13세 때 누나도 잃었다. 아버지는 강압적이었고, 여동생과 자신에겐 정신질환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어린 시절의 불행은 훗날 그의 예술의 주제이자 원동력이 됐다. 평생을 고독 속에 살았던 뭉크에게 예술은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몸부림이자 유일한 치유제였다.

그는 대상을 관찰해 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본 것을 기억해 그렸다. 절규도 오슬로 에케베르크 언덕의 산책길에서 본 저녁노을에 대한 기억을 그린 것이다.

“해질 무렵 나는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의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때 나는 자연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가 일기에 쓴 글이다. 그러니까 그림 속 주인공은 화가 자신이었던 거다.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색채, 비틀리고 과장된 풍경과 인물을 통해 화가는 세기말 인간의 외로움과 공포, 고통과 비극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당시 이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평론가들조차도 ‘그림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뭉크가 표현주의의 창시자라는 명성을 얻은 건 훗날 얘기다.

사람은 몹시 놀라거나 괴롭거나 분노하거나 두려울 때 비명을 지른다. 살다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이 극한 감정 상태를 뭉크처럼 완벽하게 표현해낸 화가가 또 있을까. 이 그림이 여전히 울림을 주는 건 현대인들이 느끼는 고통과 분노, 공포와 광기가 그가 살았던 100년 전 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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