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광화문에서/이헌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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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요즘 프로야구 인기가 전같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다. 10일까지 야구장을 찾은 시즌 관중 수는 477만3194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가량 줄었다.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대한민국에는 야구 말고도 재미있는 할 거리, 볼거리가 너무 많다”는 게 대표적이다. KBO리그의 수준 저하를 이유로 드는 목소리도 나온다. 야구장을 찾기에는 경제가 너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까. 며칠 전 만난 한 야구 관계자는 시들해진 야구 인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야구가 더 이상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야구가 그렇다. 투수는 던지고, 타자는 친다. 한 팀은 이기고, 다른 팀은 진다. 어쩔 때는 잘해서 이기기보다는 상대 팀이 더 못해준 덕분에 이기기도 한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드라마를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런 야구계에 지난달 말 예상치 못했던 한 개의 공이 날아들었다. KBO리그 최초의 비선수 출신(비선출) LG 투수 한선태(25)가 그 주인공이다. 1군 선수 한선태는 ‘기적’의 다른 이름이다. 7년 전 그는 경기 안산 반월공단의 한 자동차 외형 가공 공장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공놀이를 좋아해 친구들과 틈만 나면 캐치볼을 하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야구 선수를 꿈꿨던 것도 아니다. 중3이던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으로 열린 한일전이 처음으로 집중해서 본 야구 경기였을 정도다. 언더핸드로 일반인치고는 빠른 시속 120km가량의 공을 던지긴 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고교 투수의 스피드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회인 야구가 그의 주 무대였다. 군대는 강원 철원 수색대에서 21개월을 복무했다.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혼자가 아닌 단체 생활로 야구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제대 후 독립구단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했는데 공이 갑자기 빨라진 것이다. 팔을 조금 올렸더니 시속 140km대의 공이 나왔다. 취미였던 야구가 도전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일본 독립리그로 건너가 일본 프로야구 투수 출신 김무영 코치의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열린 신인드래프트에서 LG로부터 10순위 지명을 받았다. 6월 말 1군에 올라온 그는 지금까지 6경기를 던졌다. 한 경기, 한 경기가 KBO리그의 새 역사였다. 무엇보다 마운드에 선 그의 존재 자체가 팬들에게는 새로운 꿈과 희망이 되고 있다.

그는 “공 한 개, 한 개가 내게는 시험이나 마찬가지다. 매 구를 소중하게 집중해서 던지고 있다”고 했다. 선수의 마음가짐은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LG 팬은 물론이고 다른 팀 팬들조차 한선태의 투구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게 된다. 무미건조했던 야구에 그렇게 또 하나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얼굴에선 생기가 넘쳐흐른다.

작품성과 흥행 두마리 토끼를 잡았던 영화 ‘머니볼’에서 주인공 빌리 빈 역을 맡았던 배우 브래드 피트는 다음과 같은 명대사를 남겼다. “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How can you not be romantic about baseball?).” 마운드에 선 한선태를 볼 때마다 그 대사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프로야구#한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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