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25시/최우열]황교안, ‘박근혜 닮은꼴’ 리더십에서 벗어나야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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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보궐선거 당일 서울 영등포 자유한국당사 선거상황실. 황교안 대표(가운데)는 오후 9시 반부터 박빙 지역구인 경남 창원성산의 개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2시간 내내 자리를 뜨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동아일보DB
3일 보궐선거 당일 서울 영등포 자유한국당사 선거상황실. 황교안 대표(가운데)는 오후 9시 반부터 박빙 지역구인 경남 창원성산의 개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 2시간 내내 자리를 뜨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동아일보DB
최우열 정치부 기자
최우열 정치부 기자
“왜 이렇게 법조인이 많을까.”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인사검증 업무를 했던 한 인사는 국무총리, 장차관, 공공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검증을 하면서 늘 이 같은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인사검증 대상자로 가장 많이 내려오는 직군은 판검사 출신 등 법조인. 두 번째는 군인, 세 번째는 공무원. 여의도 정치권 인사들은 4순위에 불과했다.

어느 날 박 전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를 잡은 그는 조심스럽게 “법조인들을 왜 이렇게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웃으며 “안정감이 있잖아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안정감’은 박 전 대통령의 인사철학을 집약한 핵심 키워드다. 국무총리 인사만 봐도 일부가 낙마하는 홍역을 치르면서도 김용준, 정홍원, 안대희에 이어 마지막엔 황교안 현 자유한국당 대표까지 정권 내내 법조인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알려지지 않았던 후보자들도 송종의 전 법제처장,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등 대부분이 법조인이었다. 하지만 안정감을 갖춘 ‘박근혜의 율사’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등의 순간엔 별 역할을 하지 못했고, 정권은 그렇게 스러져 갔다.

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 총리였던 황 대표도 안정감을 자신의 핵심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박 전 대통령을 닮은 면이 있다. 물론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갈 곳을 잃고 표류하던 한국당이 가장 절실했던 것도 어찌 보면 ‘황교안식 안정감’일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2월 27일 당 대표로 취임한 황 대표의 선택도 안정감을 빼놓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취임 직후 당직 인선에서 통상 3선 국회의원이 배치되던 당 사무총장에 선수(選數)를 높여 4선의 한선교 의원을 낙점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4·3 보궐선거 경남 통영-고성 지역구에는 예상대로 검사 시절 황 대표의 측근인 정점식 전 대검 공안부장이 발탁됐고, 황 대표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여의도에 입성했다. 경남 창원성산엔 황 대표 출마론이 나왔지만 황 대표는 모험 대신 단독으로 공천을 신청한 강기윤 전 의원을 공천했다. 통영-고성에서 1승, 창원에서 석패한 선거 결과를 두고 당 안팎에선 “안정적인 당 운영의 결과로 사실상 승리한 선거”라는 평가가 나왔다.

내년 총선 공천관리에 관여할 가능성이 높은 당 조직부총장에 40대 변호사 원영섭 서울 관악갑 당협위원장을 ‘깜짝’ 임명한 것을 두고도 안정감을 인선 배경으로 꼽는 분석이 나온다. 원 부총장이 지난해 ‘드루킹 특검’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등 오랫동안 당에 기여하면서도 친박(친박근혜), 비박(비박근혜) 같은 계파색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황 대표가 상식선에서 선택할 수 있는 ‘안정적’ 인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당 일각에선 “정점식 의원 공천에 이어 또 법조인이냐” “또 박근혜식 안전 제일주의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정점식 의원이나 원 부총장의 능력과 자질이 떨어진다는 게 아니다. 신임 당 대표의 정치적 액션치곤 너무나 안정적이라는 게 문제”라고 했다. 실제로 황 대표 체제 한 달 반 동안 ‘탕평’ ‘세대교체’ ‘파격’ 등 누가 봐도 눈길을 끌 만한 강력한 대국민 메시지가 담긴 ‘황교안표 정치’는 별로 없었다.

물론 황 대표가 당초 예상보단 순항하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대여 투쟁 메시지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날카로워지면서 “정치 신인에서 벗어났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정치인 황교안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꼭 1년 남은 내년 총선은 물론이고 차기 대선까지의 길은 황 대표가 법무부 장관과 총리를 지내며 경험하기 어려웠던 각종 비포장도로와 ‘지뢰밭’이 기다리고 있다. ‘안정적 드리블’만으론 돌파해 완주하기 어려운 길이며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도 어렵다. 결국 필요한 건 황 대표만의 ‘플러스알파’다. 그게 뭔지는 아직 황 대표 자신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걸 찾아서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채 안정감만으로 승부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황 대표가 과연 박 전 대통령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황교안 2.0’으로 거듭날지 지켜볼 일이다.
 
최우열 정치부 기자 dnsp@donga.com
#황교안#박근혜#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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