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아픔과 사랑의 변증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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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호랑가시나무

호랑가시나무의 열매와 꽃과 껍질은 각각 예수의 핏방울, 탄생, 수난을 의미한다.
호랑가시나무의 열매와 꽃과 껍질은 각각 예수의 핏방울, 탄생, 수난을 의미한다.
늘푸른떨기나무 호랑가시나무는 나뭇잎이 호랑이 발톱을 닮아서 붙인 이름이다. 호랑가시나무는 한자로 묘아자(猫兒刺) 혹은 노호자(老虎刺)다. 제주도에서는 ‘더러가시낭’이라 부른다.

호랑가시나무의 잎은 아주 딱딱하고 끝이 바늘처럼 날카롭다. 그런데 간혹 호랑가시나무와 물푸레나뭇과의 늘푸른떨기나무 구골나무를 혼동한다. 호랑가시나무와 구골나무는 모두 잎의 끝이 뾰족하지만 갈라지는 모양이 다르다. 두 나무는 꽃피는 시기도 다르다. 특히 두 나무는 익은 열매의 색깔이 전혀 다르다.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는 붉고 딱딱하지만 구골나무의 열매는 검고 부드럽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의 호랑가시나무 군락은 우리나라에서 아주 보기 드문 호랑가시나무 천연기념물이다. 나는 호랑가시나무가 ‘붉은 눈동자’로 변산반도의 푸른 물결을 응시하던 모습, 호랑가시나무의 열매가 푸른 물결에 박힌 해인(海印)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호랑가시나무는 크리스마스 계절에 사용하는 사랑의 열매와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지팡이 때문에 유명한 나무다. 호랑가시나무를 사랑의 열매로 사용하는 이유는 예수가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리면서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피를 닦아 준 로빈이라는 새가 가장 좋아한 열매였기 때문이다. 티티새인 로빈은 부리로 예수의 머리에 박힌 가시를 파냈고, 그러다가 가시에 찔려 로빈도 붉은 피로 물든 채 죽고 말았다.

성탄절 때 호랑가시나무의 잎과 줄기를 둥글게 엮는 것은 예수의 가시관을 의미한다.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는 예수의 핏방울을, 꽃은 예수의 탄생을, 쓰디쓴 껍질은 예수의 수난을 의미한다. 해리포터가 호랑가시나무를 지팡이로 사용한 것은 이 나무의 날카로운 잎 때문이다. 날카로운 잎은 나무의 가시처럼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벽,피)邪)의 의미를 갖고 있다.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는 예수가 죽음으로 실천한 사랑을 상징한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를 기념하는 공간에서 호랑가시나무를 자주 만날 수 있다. 호랑가시나무에 대한 기억은 아픔과 사랑의 변증이다. 위대한 사랑일수록 아픔도 비례한다. 아픔이 클수록 슬픔도 깊고 슬픔이 깊을수록 그리움도 비례한다. 한 존재에 대한 사랑은 마음을 서로 마주할 때 이루어진다. 마주하는 순간은 존경과 존중의 시간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늘푸른떨기나무#호랑가시나무#더러가시낭#성탄절#예수#예수 가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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