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8년 전인 2009년 11월 27일 밤.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 앞에 두꺼운 오리털파카를 입고 손난로, 이불까지 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다음 날 아침 미국 애플 아이폰의 첫 개통행사를 보기 위한 밤샘 대기 줄이었다.
아이폰을 처음 손에 쥔 한국인들은 철기시대로 직행한 석기시대인들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건드리는 것만으로 조작할 수 있고, 카카오톡 같은 실시간 메신저 등 다양한 앱과 모바일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전화기’가 있다니.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요술 방망이’가 왜 여태 들어오지 않았을까.
스마트폰 혁명을 촉발시킨 아이폰이 세상에 선보인 지 올해로 10년이 됐지만 한국에선 아이폰의 역사가 8년에 불과하다. 당국이 무선인터넷 표준으로 통신사 게이트웨이를 거쳐 접속하는 ‘위피(WIPI)’ 규제를 고수하는 바람에 PC처럼 사용자가 모바일 웹브라우저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폰의 상륙이 불가능했다. 요즘 전자상거래와 핀테크를 위해 만들어진 공인인증서가 오히려 시장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무선인터넷을 신속하게 정착시키기 위해 도입된 위피 제도가 혁신을 막는 ‘괴물’이 된 것이다.
통신사들은 ‘위피 울타리’에 안주해 새로운 시장으로 나아갈 기회를 놓쳤다. 당시 폴더폰 가입자들은 ‘네이트’ ‘매직엔’ ‘이지아이’ 등 통신사 무선인터넷 포털을 거쳐 인터넷 서비스에 접속해야 했는데, 콘텐츠가 제한적인 데다 사용료와 데이터 이용료까지 이중으로 내야 했다. 통신사들은 콘텐츠 제공자(CP)에겐 수수료까지 받았다. 길목만 잘 지키면 앉아서 큰돈을 버는 이 사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폰 등장 이후 이 알짜 사업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한국의 탄탄한 폴더폰 시장에 중독된 휴대전화 회사들도 위기를 맞았다.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하기 직전인 2009년 만난 국내 전자회사의 휴대전화 개발 담당자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 시장의 판이 바뀔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조직의 투자 우선순위는 당장 잘 팔리는 폴더폰에 있었다. 눈앞의 실적이 중요한 최고경영자들은 현실을 외면했다. 불과 1년도 안 돼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한국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속 인터넷과 이동통신망을 갖춘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었지만, 2년여간 스마트폰 혁명의 ‘갈라파고스’였다. 정부 주도로 제도와 기술 인프라가 잘 깔렸지만,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규제를 손질하고 기술 변화를 따라잡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성공에 안주한 결과 한국 경제는 하마터면 세계 1위 휴대전화 회사인 노키아의 몰락으로 타격을 받은 핀란드 경제의 전철을 밟을 뻔했다.
시장의 변화에 둔감하면 잘나가던 기업이나 국가도 순식간에 고꾸라지는 게 ‘초경쟁 사회’의 특징이다. 다음 달 6일 열리는 ‘2017 동아비즈니스포럼’ 기조 연사로 나선 필립 코틀러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성공한 기업은 성공하게 만들어 준 일만 하려고 한다. 실패를 했을 때 비로소 신선한 생각을 한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제야 알려고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세계의 수준 높은 소비자들을 홀딱 반하게 한 제품을 척척 만들어낸 제조업 강국 한국이 왜 중국의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글로벌 소셜미디어 기업을 배출하지 못하는지 곰곰이 따져보라고 조언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도전적 사고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8년 전 아이폰 쇼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경고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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