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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김종석 기자의 스포츠 인생극장]<37> 김인식 KBO 규칙위원장

입력 2015-03-16 03:00업데이트 2015-03-16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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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 국민감독… “요즘도 美日야구 보며 연구”
한국 야구에는 숱한 명장이 존재했다. 하지만 ‘국민 감독’이라는 영광스러운 작위가 붙은 사례는 흔치 않다.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칙위원장(68)은 그 원조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주요 국제대회에서 독이 든 성배라는 대표팀 감독을 맡아 아시아경기 우승,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4강 등의 위업을 이뤘다.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 ‘가슴에 태극기를 새겨라’ 등 어록도 남겼다. 9일 서울 야구회관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과분한 칭찬이라 부끄럽다. (대표팀을) 오래 한 데다 한일전도 스무 번 정도 치러 그런 게 아닐까”라며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웃었다.

○ “감독도 많이 져봐야 한다”

28일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준비에 여념이 없던 그는 “10개 구단 체제가 시작돼 하루에 5경기씩 열린다. 더욱 흥미롭게 됐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올 시즌 KBO는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마련했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경기 흐름을 팽팽하게 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몇 년 전 한화 감독 시절 미국 하와이에서 만났던 그가 선수들에게 신속한 동작을 강조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야구팬들을 답답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감독과 선수들의 의식도 개선돼야 한다.”

‘스피드 업’을 주창하는 김 위원장이지만 감독으로는 기다림을 통한 믿음의 야구를 신봉했다. 반세기 전인 1965년 배문고 졸업 후 성인 무대에 뛰어든 그는 실업야구 크라운맥주에서 9승 2패, 평균자책점 1.49로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어깨 부상으로 26세에 은퇴한 뒤 배문고와 상문고, 동국대 감독을 거쳐 1986년 해태 코치로 프로에 합류했다. 부상과 조기 은퇴, 고교와 대학 감독 등을 통해 얻은 경험이 그에게는 큰 자산이었다.

“잘못 지적은 누구나 한다. 멀리 내다보고 어떻게 능률을 끌어올릴까 생각하는 게 감독의 키포인트다. 선수 스스로 절박함을 느끼게 하면 몇 배 노력하더라. 감독도 많이 져 봐야 한다. 좋은 팀에서 늘 이기다 보면 감독이 잘해 이긴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감독은 날카로운 눈과 정확한 머리, 따뜻한 가슴을 모두 지녀야 한다.”

○ 2004년 뇌경색, 그리고 재활

그가 2004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건 잘 알려진 얘기다. 당시를 떠올리는 그의 표정이 굳어져갔다. “며칠 과로하다 선수 결혼식이 있어 청주에 갔다 잡채를 먹는데 너무 짰다. 세상 떠난 동원이(당시 한화 2군 감독)가 옆에 있어 ‘왜 이리 짜냐’고 했더니 ‘전 하나도 안 짜다’고 했다. 그러더니 손이 말을 안 들었다. 그때라도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다음 날 입원하면서 너무 늦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루에 담배 3갑을 피우고 허구한 날 폭탄주 20잔을 들이켜면서 결국 탈이 났다. 한물간 선수나 좌절한 선수들의 재기를 이끌면서 ‘재활공장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그가 정작 자기 몸은 챙기지 못했다. 하루 6시간의 힘겨운 재활 끝에 거의 움직이지 못했던 오른팔과 다리에 힘이 붙었다. 병마를 이겨내며 한화와 WBC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했던 그는 “후배들에게 오늘은 빨리 잊으라고 조언한다”고 했다.

그의 애제자로 라면 CF도 함께 찍었던 LA 다저스 류현진 얘기를 꺼내자 “현진이와 복어 요리를 자주 먹는데 이번에 출국 전에도 같이 먹었다. 몸 상태가 좋아 보여 계속 잘할 것 같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한화 시절 류현진을 뽑아 최고의 에이스로 키워냈다. “현진이가 고교 때 팔꿈치 수술을 받아 다른 팀에서 선발을 꺼렸다. 난 달랐다. 투구 동작이 다이내믹하고 컨트롤도 뛰어나 물건이 될 줄 알았다. 성격도 차분했다.” 또 “실책이 나오거나 팀 공격이 약해도 내색하지 말라고 자주 말했다. 동료들을 배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 17년간 980승…“감독 다시 할수 있다면”

김 위원장은 OB(현 두산), 한화 감독으로 17년 동안 980승 1032패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1000승 이상을 거둔 사령탑은 김응용 전 한화 감독(74)과 김성근 한화 감독(73) 등 두 명뿐이다. 이정표에 20승이 모자란 그는 “몸도 좋아졌고, 한다면야 얼마나 좋겠나”라고 속내를 내비쳤다. 중2 때 글러브와 인연을 맺은 그는 55년째 야구장을 지키고 있다. 요즘도 미국과 일본 야구를 보며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유니폼을 입고 더그아웃을 지키는 ‘김 감독’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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