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74>거짓말에 예민한 그녀라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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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오디션’은 이렇게 시작된다.

40대의 경영인 아오야마는 아내와 사별한 뒤 고등학생 아들과 살고 있다. 그는 재혼을 고려 중이다.

영화 일을 하는 친구가 아이디어를 낸다. 영화 오디션을 가장해 여성들의 지원을 받아보자는 것. 아오야마는 수천 명 가운데 한 명, 스물네 살의 아사미에게 반한다. 두 사람은 가짜 오디션을 계기로 만나 어울리게 된다.

그는 그녀와 친해진 뒤에야 하나씩 진실을 털어놓는다. 오디션은 재혼 상대를 만나기 위한 구실이었다는 것, 사별한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다는 것 등. 한데 진실을 알게 된 아사미가 돌연 종적을 감춰버린다.

적지 않은 남성이 아내 또는 여자친구에게 대수롭지 않게 거짓말을 한다.

때로는 위해주는 마음에 ‘하얀 거짓말’도 한다. 의도는 좋을지라도 거짓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어떤 여성은 거짓말이 할퀴어놓은 과거의 상처를 내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진실이겠거니 믿다가 버림받았을 수도 있고 가정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을 수도 있다. 우연한 계기로 그 아픔이 살아나면 과거에 상처를 주었던 이와 지금 방아쇠를 당긴 이를 동일시한다. 대개는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방아쇠를 당길 때가 많다. 그 결과가 치 떨리는 배신감이다. 이 지점에서 러브스토리가 호러물로 바뀌는 반전의 충격이 시작된다.

아무리 여리고 착했던 여성일지라도 한계를 넘으면 위험한 여자로 변신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소설 속의 아사미는 정도가 매우 심했다. 그녀는 아오야마의 집에 숨어들어 근육이완제를 주사해 그를 제압한다. 그의 눈앞에서 애완견을 참혹하게 죽인다. 그러고는 톱으로 그의 발목을 절단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아사미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대다수의 여성이 어느 정도는 아사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바람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자기 남자가 모든 진실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울 정도로 공유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반면 상당수 남성의 방식은 다르다. 자기 여자를 낱낱이 알려 하지도 않거니와 ‘적당히 말해도 이해해주겠거니’ 생각한다.

두 사람 사이의 신뢰와 유대감은 이 같은 간극 위에서 외줄타기로 움직인다.

새벽에 눈을 떴다가 발치에 선 아내를 발견하고도 놀라지 않는 남자라면 문제없이 잘살고 있는 것이다.

한상복 작가
#여자#거짓말#아픔#상처#신뢰#유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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