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 실험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으로 기로에 서 있다. 신당은 다음 주 창당을 목표로 정강정책과 당헌당규를 조율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민주당의 정체성과 이념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다. 어쨌든 안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렸다. 당초 기성 정치를 넘어서는,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버렸다. 민주당과 정치공학적으로 연대해 그가 그토록 혐오하던 눈앞의 선거만을 위한 정당을 만들었다. 우리 국민들은 선거를 앞둔 정치세력 간의 이합집산에 식상해 있다. 민주당이 정당공천제 폐지 약속을 지켜 새 정치 실천 의지가 높다는 합당의 명분이 궁색해 보이는 이유다.
그동안 안 의원 측은 새 정치의 콘텐츠가 없다는 비판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내세운 새 정치의 콘텐츠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바로 양당독점체제의 타파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의 목표였던 지역주의 타파와 맥을 같이하면서 보다 실천적인 내용이다. 양당 독점구도는 기성 정치가 기득권을 보존하는 굳건한 기반이다. 의원 20명이 모여야 구성되는 교섭단체는 국회 운영의 권한은 물론이고 국고보조금을 거의 독점한다. 여기서 군소정당은 불이익을 당하지만 20명의 의원을 배출하지 않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양당이 국회법을 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한 제3, 제4의 정당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정치학계는 ‘안철수 현상’을 주목했고 한국정치 개혁의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다. 물론 안 의원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독자 창당의 어려움,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인재 영입의 난항, 서울시장 후보의 부재, 호남 지역에서 신당 지지율의 하락 등으로 고민이 컸다. 기성 정치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새 정치에 맞는 인물의 발굴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했을 것이다. 17개의 모든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를 내겠다는 공약이 얼마나 허망한 꿈이었던가.
이제 안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새 정치의 미래는 새정치민주연합을 어떻게 100년 정당으로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 앞으로 지방선거 이후 펼쳐질 당내 권력 투쟁, 2016년 총선을 둘러싼 공천 지분 갈등 등 두 세력 간의 화학적 결합을 위한 험난한 진로가 예상되지만 새 정치의 불씨는 아직 완전히 꺼진 것이 아니다. 기존의 정당과는 차별화되는 가치와 비전, 수평적 의사결정구조, 정당 조직의 하부구조 구축 등 중요한 과제들의 실현을 통해 새 정치는 가능하다.
만일 민주당의 낡은 정치의 틀이 너무 고착돼 있어 새 정치가 침투할 공간이 없다면 안 의원 측은 당장이라도 통합을 중단시켜야 한다. 낡은 틀에 새 정치를 담는 것은 애초부터 쉽지 않은 일이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국민들이 기대하는 새 정치와는 다른 모습일 수 있다. 6·15선언과 10·4선언을 둘러싼 논란은 새 정치의 내용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안 의원이 원래 계획했던 제3지대 구축을 위한 핵심 어젠다로 보기 어렵다.
새 정치는 세 가지 핵심 어젠다를 갖고 있다. 우선 앞서 제시했듯이 양당독점체제의 타파이다. 3, 4개의 교섭단체가 자유롭게 경쟁하는 온건한 다당제의 구축이 극단적인 갈등정치와 승자 독식의 정치구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당의 조직 및 운영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풀뿌리 지역정당조직이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만 진정 국민과 소통하는 정당이 될 수 있다. 동시에 보다 선명한 중앙당과 지구당의 권한 및 책임 공유가 필요하다. 셋째, 당원이 당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이익을 위한 지나친 개방성의 확대는 정당의 뿌리를 약화시켜 수명을 단축시킨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모바일 투표의 폐해를 경험했고 반성했다. 당원이 존중되지 않는 개방성의 확대는 당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 새 정치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낡은 질서를 개혁하는 것이다. 새 정치는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실천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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