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세이/임관빈]신임 장교 임관식에 부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7일 03시 00분


임관빈 전 국방대 총장
임관빈 전 국방대 총장
유머 한 토막이다. 학교에 불이 났다. 학생과 선생님들은 모두 안전한 운동장으로 피신하였다. 그런데 3층의 한 교실에 학생 한 명이 남아 있다. 모두들 빨리 내려오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 학생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당번도 나가도 돼요?”

죽음이 코앞인데 당번 이야기나 하는 바보스러움에 우리는 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이런 바보가 정말 있다. 바로 군인들이다. 군인은 죽을 위험 앞에서도 임무를 먼저 생각한다.

6·25전쟁 때 13만5000여 명의 국군이 기꺼이 목숨을 바침으로써 나라를 지킬 수 있었고, 휴전 이후에도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5000여 명의 군인이 또 목숨을 바쳤다. 베트남전쟁에서도 국익을 위해 군인 5000여 명이 산화하였다. 최근에도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등 국가 수호의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다 많은 군인이 희생됐다.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 바보’들 덕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계룡대에서 신임 장교들의 합동임관식이 열렸다. 장교는 자고로 국가의 ‘간성(干城)’이라고 했다. 유사시 나라의 존망이 이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앞장서서 기꺼이 ‘나라 바보’가 될 때 이 나라는 살 수 있다.

수많은 전쟁사에서도 입증된 바와 같이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성능 좋은 무기 체계, 잘 훈련된 병사, 국가총력 방위 태세 등 모두가 중요하다. 하지만 전승을 좌우하는 관건은 장교다. 장교들이 적을 능가하는 군사적 혜안과 용병 능력, 그리고 탁월한 리더십을 가지면 다른 요소들이 부족해도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장교들이 똑똑하지 못하면 다른 요소가 아무리 훌륭해도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손자병법에도 전쟁을 하기 전에 어느 나라 장수들이 더 훌륭한지를 꼭 비교해 보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패배한 후 이순신 장군께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되었을 때 조선 수군은 겨우 배 12척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이 12척의 배로 일본 해군 133척과 싸워 승리를 만들어 내었다. 안중근 의사도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함으로써 대한국인의 기개를 드높이고 독립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6·25전쟁의 영웅 심일 소위는 적자주포에 포탄을 들고 몸을 던짐으로써 6사단이 춘천을 사흘간이나 지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강재구 소령은 훈련하던 중 부하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수류탄 위에 장렬히 몸을 던졌다. 장교들의 이런 리더십과 군사적 혜안이 나라를 지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안보 상황은 지금도 변함없이 불안하다. 언제 어떤 적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우리 군의 확고한 대비 태세와 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핵심에 이 나라의 간성인 장교들이 있고, 오늘 새롭게 임관하는 장교들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그래서 큰 것이다.

이들이 기꺼이 ‘나라 바보’의 길을 가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은 국민들의 뜨거운 격려와 신뢰다. 이들이 오로지 군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우리 국민이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럴 때 그들은 사기 백배할 것이다. 신임 장교 여러분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임관빈 전 국방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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