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중경]워싱턴에 대한 한국의 투자 충분한가

  • 동아일보

美 정치외교 주무르는 싱크탱크
적지않은 한국 전문가 있지만 평소 지원도 교류도 거의 없어
대통령 의회연설-국빈방문도 실익이 있는지는 의문
국내용 ‘보여주기 외교’ 그만… 치밀한 국익외교 방책 세워야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워싱턴은 세계 정치, 외교의 중심이다. 세계역사의 진행 방향이 이곳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이고 동북아 안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니 한국의 존재감이 워싱턴에서 얼마만큼 느껴지는지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워싱턴에는 많은 싱크탱크들이 있다. 적지 않은 한국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싱크탱크는 정책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며 의회 행정부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고 있어 사실상 미국의 정치 외교를 움직이는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이다. 싱크탱크에 있다가 정부 고위직으로 발탁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우리들이 워싱턴 싱크탱크와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고 인적 교류를 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워싱턴 싱크탱크에 쏟는 관심이 놀라울 정도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말을 하는 한국 전문가들이 봉급을 받는 곳이 한국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경우는 드물고, 일본의 입김이 강한 아시아 관련 프로그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서 한국을 연구하고, 한국의 입장을 옹호할지 걱정된다.

적지 않은 한반도 전문가들은 자신을 동북아 전문가로 인정해 주기를 바라지, 영역을 한반도에 한정시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국에 묶어놔 봐야 일자리 얻기도 힘들고 평소에 챙겨 주는 사람도 없다. 북한이 미사일이나 쏴야 앞다퉈 인터뷰를 하자고 북새통을 이루다가 금세 잠잠해진다.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한국 대통령들이 워싱턴에 오면 의회연설을 하는 것이 외교 관례처럼 되어 있다. 국내용 홍보 포인트일지는 몰라도 미국 국민에게 주는 영향은 거의 없다. 한국 대통령의 의회연설을 보도하는 매체를 찾기 어렵다. 의회연설을 하기 위해 외교부가 들이는 노력은 눈물겹지만 정작 미국 관련 인사들은 ‘왜 의회에서 꼭 연설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표시한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도 워싱턴에 오면 관행적으로 의회연설을 하는지 조사해서 아니라고 판명되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시키는 것이 순리다.

외교부도 ‘대통령을 안에서 빛내는 외교’에서 ‘대통령을 밖으로 활용하는 외교’로 개념을 바꿔야 한다. 의회연설 국빈방문 등 실익은 적고 튄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국내홍보용 의전을 위해 백방으로 뛰기보다는, 대통령이 시간을 갖고 중요한 외교 현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길로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국민도 대통령이 받는 대접보다 실체적 성과를 눈여겨봐야 한다.

국방 관련 고위관계자가 워싱턴에 올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길 요구하는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국제법이 인정하는 효력이 있고 폐기되지 않는 한 유효하다. 우리 안보를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매우 중요하지만 국내홍보 목적으로 자주 확인하려 들면 신뢰관계에 손상이 갈 수 있으니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국방 관련 고위관료가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을 모아 놓고 “워싱턴에 와서 꼿꼿한 외교를 하고 돌아갔다고 써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워싱턴이 ‘꼿꼿한 외교’의 대상이라고 여기는 발상이 재미있다.

미군의 도움이 없으면 북한군 동향이나 핵실험 관련 물자이동 상황을 정밀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첨단장비를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군의 현실은 그리 당당하지 못하다. 한 고위 경제 관료는 국제회의에서 미국의 국내정치 문제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지적하고 조치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실일 경우 미국이 어떤 각도에서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최근의 한미관계는 미세한 흔들림이 감지된다. “베팅을 제대로 하라”는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발언에서 노출된 ‘한중관계를 바라보는 미국의 편치 않은 입장’,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의사를 표명하자 나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부터 확실히 하라’는 반응, 제이컵 루 재무장관의 아시아 순방 대상에서 한국을 빼고 원화절상을 압박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힘든 시그널이다.

워싱턴을 향한 관심과 설명의 부족, 전시작전지휘권처럼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대미전략, 어울리지 않는 당당함, 세련되지 못한 언행 등이 과거로부터 누적돼 그 부작용이 지금 발현되고 있다. 워싱턴 속의 한국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방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
#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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